오피니언 사설

사이버 테러 나든 말든 대비법은 국회서 ‘쿨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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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청와대와 백악관 등 한·미 양국의 주요 기관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해킹당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 사건은 2003년 1월 ‘인터넷 대란’ 당시에 비해 종류가 다른 해킹 기법이 사용됐다는 사실 외에는 배후와 목적 등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더구나 국정원이 이번 사건의 배후로 북한을 주목하고 있어 국민들의 불안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총성 없는 전쟁’으로 불리는 사이버 테러는 이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국방부 컴퓨터가 정체 불명의 해커들에게 해킹당해 3000억 달러 상당의 기밀 자료를 도난당했다. 지난해 8월 러시아는 그루지야 무력 침공에 앞서 정부 주요 기관들의 전산망을 무력화시키는 국가 차원의 사이버 테러를 시도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우리 공공기관들도 국내외 헤커들로부터 하루 평균 22건 이상 해킹을 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요국들은 사이버 테러를 ‘실전 상황’으로 설정하고 피해 방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국방부 해킹사건 직후 5년간 170억 달러를 쏟아붓는 ‘사이버 보안 대책’을 발표했다. 일본도 내각 조사실이 대 사이버 테러 작전을 직접 관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세계 1위의 인터넷 이용률을 자랑하는 우리의 대응은 안이할 정도다. 사이버 범죄가 급증하고 있지만 처벌은 고작 업무방해죄 등을 적용해 벌금을 물리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심지어 이번과 같은 국가 비상 사태에 대비해 지난해 발의된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은 9개월째 낮잠을 자고 있는 형국이다. 야당이 MB 악법이라며 아예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도 사이버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곧추세우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법과 제도를 철저히 정비해야 한다. 북한의 잠재적 위협에 노출돼 있는 우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이버 피해 가능성을 항상 품고 있는 처지다. 금융거래, 전기통신 등 국민 생활의 상당 부분을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불시에 온라인 공격을 감행한다고 상상하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다. 사이버 테러 방지는 곧 국민생명권 보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정부는 강도 높은 대안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