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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남자 박삼구 ‘풋백 유혹’에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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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희비는 단 1000여 일 만에 엇갈렸다. 2006년 12월 대우건설을 인수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승자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 금호의 유동성 위기는 당분간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과 같다. 대우건설 역시 M&A 후유증에 몸살을 앓을 전망이다. ‘돈 없는 M&A’가 자초한 화다. 풋백옵션의 달콤한 유혹이 부른 재앙이다. 금호-대우건설의 1000일 비화와 이들의 미래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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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발 명패’ 의 진실

대우건설 1000일의 기록 & 그 이후 #돈 없는 M&A가 부른 재앙 ‘승자의 저주’

“보름 만에 어떻게….” 대우건설 사람들의 입에선 장탄식이 흘러 나왔다. 2006년 12월 29일 서울역 앞 대우센터빌딩의 오리발(대우) 로고가 꺾쇠(금호아시아나)로 바뀐 것을 확인한 직후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2006년 12월 15일)한 지 꼭 14일 만의 일이었다.

대우건설 사람들의 마음엔 깊은 상처가 났다. ‘대우건설 문화를 지키고, 로고도 당분간 바꾸지 않겠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송년회, 이들은 조용한 반란을 꾀했다. 금호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개의치 않았다. 700개에 이르는 팀들은 일명 ‘오리발 명패’를 각각 만들어 연말 선물로 지급했다.

팀원 이름을 일일이 적은 명패에 ‘오리발 배지’를 새긴 모양이었다. 금호와 대우건설, 이젠 어엿한 한 가족이었지만 유전자가 너무 달랐다. 그만큼 이들이 넘어야 할 산은 첩첩산중을 방불케 했다.

# 남자 감동시킨 남자 박삼구

이런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나선 사람은 다름 아닌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었다. 2007년 초, 서울 모처에서 대우건설 현장소장 70여 명이 모였다. 매년 2~3차례 갖는 공식 모임. 이 자리에 참석한 소장들의 평균 연령은 50대 중반, 경력은 25년에 달했다. 그야말로 건설 현장에서 잔뼈가 굵고, 자존심이 강한 대우맨이었다.

대우건설이 금호에 인수된 직후 열린 첫 번째 모임이었던 만큼 분위기가 무거웠다. 그런데 이 자리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박 회장이었다. 그는 조그만 단상에 올라가 의례적인 인사말을 건넸다. “현장 소장 여러분! 하던 일 잘해주길 바랍니다. 구조조정은 없으니 걱정 마시고요. 대우건설과 금호의 문화가 다르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존중하겠습니다.”

1등 건설사 대우가 금호에 인수된 게 영 마뜩하지 않았던 소장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한편에선 “아시아나 비행기나 타지”라는 불평이 새어 나왔다. 바로 그때, 박 회장이 소주잔을 들고 소장들과 건배를 시작했다. 10명, 20명, 30명…. 끝자리에 있던 박찬민(가명·56·퇴직)씨는 “저러다 말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상황은 180도 다르게 전개됐다. 그로부터 30여 분 후, 박씨 앞에 박 회장이 섰다. 박씨는 위암 병력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그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위암 수술을 받아서….” 의미를 금세 알아챈 박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저는 소주로 할 테니 (박씨는) 사이다로 하시죠. 건강 조심하십시오.”

박씨도, 주위 소장들도 그의 소탈하고 터프한 모습에 놀랐다. 더구나 박 회장은 당시 참석했던 모든 소장과 잔을 기울였다. 박씨는 “박 회장은 그때 진짜 남자로 느껴졌다”며 “터프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현장 소장들 사이에서도 ‘저 사람이라면 함께할 만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했다.

박 회장 백기투항 속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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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의 스킨십 경영은 대우건설 인수 후 한동안 계속됐다. 대우건설 호프데이에서도 그는 직원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대우건설 파이팅’을 외쳤다. 그만큼 박 회장은 대우건설을 ‘괜찮은 회사’로 여겼다.

대우건설 인수로 금호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모양이다. 당연히 의욕도 남달랐다. 일주일 중 절반을 대우센터빌딩 25층에 마련된 회장실에서 집무를 봤을 정도다.

하지만 자신감과 의욕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환경·전략에 따라 이것은 성공의 발판이 되기도, 쉽게 꺾이기도 한다. 박 회장도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대우건설 인수 후 1000여 일이 흐른 2009년 6월 25일. 박 회장은 대우건설 서종욱 사장에게 매각 의사를 밝혔다. 일종의 백기투항. 그의 자신감과 의욕이 채운 것은 패배의 쓴잔이었다. 박 회장은 왜 백기를 든 것일까?

시장 관계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첫 단추를 워낙 잘못 뀄다.” 그렇다. 돈 없는 M&A가 부른 화다. 2006년 금호는 대우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6조4000억원을 쏟아 부었다.

이 중 3조원은 자기자본, 나머지 3조4000억원은 미래에셋·팬지아데카·디케이에이치 등 17개 재무적 투자자에게 빌렸다. 더 많은 투자를 받기 위해 풋백옵션도 체결했다. ‘대우건설 주가가 주당 3만1500원에 미치지 못하면 모두 되사주겠다’는 게 계약의 골자. 재무적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수는 1억2900만여 주. 행사일은 올 12월 15일, 납입은 내년 6월까지 해야 한다.

올해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1500원에 미치지 못하면 4조원(1억2900만 주×3만1500원)을 토해내야 한다. 대우건설의 주가는 대략 1만3500원선. 현재로선 풋백옵션 4조원 납입을 피하지 못할 게 확실하다. 바로 이것이 박 회장 스스로 대우건설 매각을 선언한 이유다. 대우건설을 팔아 풋백옵션 4조원을 갚겠다는 계산이다.

문제는 대우건설 매각이 만병통치약이냐는 점이다. 아쉽게도 금호도, 대우건설도 M&A 후유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이 역시 돈 없는 M&A의 재앙이다. 금호의 상황은 심각해 보인다. 산업은행과 금호가 논의하고 있는 매각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재무적 투자자 지분 39.64%(1억2900만 주)+경영프리미엄(대략 20%), 50%(1억6250만 주)+1주, 금호지분(32.55%)과 재무적 투자자 지분을 합친 72.19%(2억4500만 주) 매각 등이다.

그러나 대우건설을 어떤 방식으로 매각하든 금호로선 손해 보는 장사다. 첫째 방식에 따르면 금호는 대략 2조여원을 확보할 수 있다. 풋백옵션 행사가격 4조원에 크게 밑도는 수준. 그렇다고 둘째, 셋째 방식이 상책인 것도 아니다. 그래 봐야 금호는 최대 3조2000여억원을 손에 쥘 수 있을 뿐이다.

대우건설 피멍 들게 하는 풋백옵션

대우건설을 매각해도 풋백옵션 행사가격을 지급하기 위해 1조여원이 필요한 셈이다. 금호가 금호생명을 비롯한 자회사뿐 아니라 서울버스터미널 등 자산매각을 준비하는 이유다. 금호로선 무리한 M&A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는 셈이다. 대우건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금호 인수 후 실적이 예년만 못하다. 지난해 영업이익률(5%)은 대우인터내셔널과 분할된 2001년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이다. 금호 인수 직전인 2005년, 2006년엔 각각 13%, 11%에 달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률도 2002년 수준인 4%로 떨어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회사의 자산건전성 추락이다.

대우건설의 총 차입금은 지난해 말 2조8706억원으로 급증했고, 부채비율은 182%까지 치솟았다. 금호 인수 전 대우건설의 부채비율은 119%에 불과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금호의 경영전략에 따라 대한통운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1조8500억원을 부담한 결과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우건설의 실적은 대한통운 인수비용 반영으로 당분간 개선되지 않을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금호의 재무 부담이 대우건설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격”이라고 말했다.

대한통운의 또 다른 풋백옵션도 변수다. 대우건설은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대한통운의 공동 대주주다. 금융권에 따르면 대우건설과 아시아나항공은 2011년, 2012년 대한통운 풋백옵션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 금호가 2008년 3월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8곳의 재무적 투자자와 풋백옵션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대우건설 매각은 용기있는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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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스킨십 경영으로 유명하다. 그는 금호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직후. 이 경영법으로 대우-금호의 이질적 문화를 융합하려 했다.

계약에 따르면 재무적 투자자들은 오는 9월부터 4년 내 대한통운 3개월 평균주가가 기준가격(20만원 이상)으로 오르지 않으면 수천억원에 이르는 풋백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대한통운의 현재 주가는 9만원 안팎이다. 대우건설 노동조합 윤진국 부장은 “오는 9월 이후 대한통운 주가가 20만원 이상으로 뛰지 않으면 대우건설은 향후 몇 년 내에 어마어마한 풋백옵션을 짊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풋백옵션으로 대우건설이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은행들이 M&A에 재무적으로 참여할 때 인수기업에 과도하게 부담되는 약정은 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이 때문이다. 7월 3일 대우건설 매각작업을 위한 첫 회의가 열렸다.

산업은행과 노무라증권 등 매각주간사는 조만간 공개입찰 시기를 결정할 계획이다. 현재로선 공개 매각이 상책이다. 공매가 순조롭지 않으면 금호 유동성에 빨간불이 켜진다. 시장은 벌써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호의 회사채 금리 변동 추이를 보면 그렇다. 금호의 회사채 단기물(3·6·9개월)은 금리 변동 폭이 거의 없다.

하지만 1년 이상 장기물은 딴판이다. 회사채 1.5년짜리 금리는 6월 26일 8.67%에서 30일 8.72%로 0.05%포인트 올랐다. 2.5년짜리는 같은 기간 10.20%에서 10.26%로 0.06%포인트 상승했다. 당장은 괜찮지만 1년 후 금호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경고성 시그널이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박 회장의 대우건설 매각선언을 두고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평했다.

결단은 책임을 부르게 마련이다. 무리한 M&A에서 기인한 재앙은 이제 박 회장과 금호가 감당해야 한다. 문제는 그 피해를 대우건설이 함께 짊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승자의 저주는 인수자와 피인수자를 가리지 않을 정도로 가혹하다. ‘돈 없는 M&A’를 지양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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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금호 인수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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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매각 둘러싼 궁금증 ‘셋’

1. 대우건설 매각하면 대한통운은?
대우건설 팔려도 주인은 금호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매각하면 대한통운은 어떻게 될까? 금호그룹의 계열사인 대우건설은 대한통운의 공동 대주주다. 대한통운의 지분은 ▶아시아나항공 23.95% ▶대우건설 23.95% ▶대한통운 자사주 23.77% ▶금호피앤비화학 1.46% ▶금호개발상사 0.12%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에 따르면 대우건설이 매각돼도 대한통운은 금호 계열사로 남는다. 대우건설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23.95%가 빠져도, 금호그룹이 대한통운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 대우건설 인수후보는 누구?
공개 매각 원칙… 해외매각 가능성
  산업은행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 매각을 위한 첫 만남을 가졌다. 이에 따라 대우건설이 누구에게 인수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인수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곳은 포스코와 롯데건설. 유력후보로 부상했던 LG그룹은 인수전 불참을 공식 선언했다. 포스코는 시공능력순위 6위의 포스코건설을 계열사로 두고 있지만 해외 플랜트 사업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롯데건설은 주택부문에 집중된 사업을 다각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우건설은 플랜트 사업은 물론 공공사업에서도 강점을 가지고 있다”며 “두 건설사가 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대우건설 인수로 약점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 건설사는 명확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지 않다. 더, 롯데캐슬이라는 브랜드를 보유한 이들이 대우건설을 실제로 인수할지도 미지수다. 제3의 기업이 새로운 후보로 등장하거나, 해외 매각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3. 공개 매각 실패하면 어떻게 되나?
산은, PEF 조성해 인수할 수도
  대우건설의 공개 매각은 성사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은 구조조정펀드(PEF) 설립 작업에 들어갔다. 대우건설 공개 매각이 실패하면 산은 PEF가 인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 9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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