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림의 300mm 인터뷰 ②] 히딩크 “시각장애인 구장은 여친의 아이디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대전역 도착

▶ 당분간 러시아에 남는다

박: 만약 러시아 대표팀이 예선을 통과하게 되면 향후 한국과 평가전을 치를 의향이 있으세요?

히: 벌써 축구협회와 얘기중이야. 같은 그룹에 배정된다면 불가능하지만 다른 그룹에 속한다면 시도해볼까 해. 12월 이후에 날짜를 잡아서 한국과 러시아가 친선 경기를 가지면 한국에 또 올 수 있겠지.

박: 좀 껄그러운 질문이 될 수도 있는데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과 러시아가 붙는다면요?

히: 좋은 경기가 될 것 같은데?

박: 박지성 선수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뛰면서 첼시 팀의 히딩크 감독과 경기를 붙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얘기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히: 음, 나도 기사를 본 적이 있어. 내가 지성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안 만났던 것이 좋았다고 했다면서? 우리가 만나서 뭔가 극적인 게임을 보여주길 원했던 팬들도 많았을 것 같은데.(웃음)

박: 첼시 팀을 맡고 나서 FA컵 우승까지 이끌었는데 월드컵 끝나면 첼시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세요?

히: 아니. 나는 러시아에 당분간 계속 남아있을 계획이야.

박: 한국으로는 안 돌아오세요?

히: 이렇게 매년 오고 있잖아.(웃음) 물론 시합 때문에 오는 건 아니지만 나는 매년 한국에 돌아올 계획을 세우고 있어. 히딩크 재단을 만들고 시각장애인용 축구장을 건립한 것도 한국과 끊임없이 같이 일하고 싶어서지.

논산역

▶ 남북단일팀 감독 생각있다

박: 최근 허정무 감독이 '히딩크 감독 이후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들은 한국 축구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언급해 논란이 있었는데요. 이 얘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많은 축구팬들이 감독님이 다시 한국 대표팀을 맡기를 바라고 있잖아요.

히: 글쎄, 우선 허정무 감독의 얘기에 대해서는 난 동의하지 않아. 나 이후에 감독들이 대표팀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처음 내가 한국에 왔을 때는 16강에 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것보다 성적이 좋자 사람들이 나에 대한 평가를 좋게 내리기 시작했지.

사람에 대한 평가, (인기도 마찬가지고) 오르락 내리락이 있는 것이 정상이야. 성공을 했다가도 실패할 수 있고, 그게 일반적인 거지.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금 정상적인 경로에 있어. 축구 강국들도 게임에서 어처구니 없이 질 때가 많은데 뭘. 월드컵은 사람들의 관심이 너무 많은 경기니까 압박과 부담감이 클 수 밖에 없지.

박: 2004년 7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남북 단일팀이 만들어지면 한국을 다시 한번 맡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 생각은 변함 없으세요?

히: 오늘 조사 많이 해왔네.(웃음) 맞아. 나는 여전히 그럴 의향이 있고, 또 남북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있게 보고 있어, 그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내가 도움이 될수 있다면 언제든 다시 그런 일을 해볼 생각이야. 정치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스포츠가 가능하게 만들 수 있거든.

박: 제가 마지막으로 객관식 질문을 준비했는데요. 다음의 4경기 중 감독님이 생각했을 때 가장 짜릿했던 경기 하나만 꼽아주시죠.

①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이탈리아 ② 2006년 독일 월드컵 호주:일본 ③ 유로2008 8강전에서 네덜란드:러시아 ④ 2009년 FA컵 첼시:에버턴

히: (2분간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한 끝에) 순위를 매기기가 정말 힘든데? 호주:일본 전도 짜릿하고 쾌감을 주는 경기였고, 한국과 이탈리아 전도 대단한 경기였어. 모두다 똑같이 중요하고 또 똑같이 흥분됐어. 그 당시에는 그 경기가 최고이고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던 것 같아.

익산역 도착

▶ 시각장애인 구장은 여친의 아이디어

박: 이번에 한국에 오신 것은 히딩크 재단 시각장애인용 축구장 3, 4호(수원·전주) 개장을 위해 방문하셨는데요.

히: 축구 감독으로서가 아니라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의미있는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됐지. 어느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침대 위에서 엘리자베스가 일어나자 마자 그러는 거야. 한국을 위해서 뭔가 뜻깊은 일을 하자고. 일로만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랑을 준 한국 사람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돕고 싶다고 하더라고.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도 공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전용 구장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그 말을 듣고 무릎을 쳤지. 그래서 4년 전부터 준비했고 벌써 4호가 개장됐어. 참, 뜻깊고 가슴 뿌듯한 일이야.

박: 노후에 한국에 살 계획은 없으세요?

히: 음 솔직한 답변을 하자면 한국은 노후에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살고 싶은 아름다운 나라 중 하나야. 아마 죽을 때까지 1년에 1~2번은 한국에 올 거야. 그리고 몇 개월 살다가 또 다른 곳으로 가겠지. 영원히는 아니고. 고향인 네덜란드에서 노후를 계속 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곳에서 즐길 거야.

박: 감독님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히: 응. 나는 엘리자베스가 심심해 할 수도 있으니 이제 자리로 돌아가야겠다. 민준이 잘 키우고 다음에 더 예쁘고 행복한 모습 보여줘. 아기가 아빠를 닮아서 잘생겼던데?

[JES]

[박경림의 300mm 인터뷰] 히딩크 편
① "러시아와 한국 사람들의 반응 차이점은…"
② 히딩크 감독 히딩크 "남아공서 한국과 러시아가 붙는다면…"
③ 히딩크 "한국女보다 러시아女가 더 예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