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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은 지금]중.백두서 금강까지 7도 산하 누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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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차례에 걸친 우리의 방북 답사활동은 '산 넘고 물 건너' 북한 전역을 가로지르는 대장정이었다.

북녘의 동서남북을 종횡으로 누볐다.

동으로 원산 송도원과 금강산, 서로 구월산과 정방산, 남으로 개성, 북으로 묘향산과 백두산…. 평양은 물론이고 황해남북도.평안남북도.강원도.양강도.함경남도 등 북한의 행정 도 (道)에는 거의 다 발을 들여놓았다.

함북과 자강도에만 못 가봤다.

북한의 5대 명산 백두.금강.묘향.칠보.구월산 가운데 기상조건이 나빠 직승기 (헬리콥터) 를 띄울 수 없었던 칠보산을 빼고는 다 올랐다.

벤츠승용차와 미니버스로 기동성이 확보되고 차량왕래가 많지 않아 시원스럽게 뻗은 도로를 고속 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엄청난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리운 금강산' 은 2차 방북 때 가 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의 큰 비로 평양~원산간 고속도로의 무지개굴 일부가 내려앉아 복구공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 7월의 3차 방북 때야 간신히 금강산행을 실현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 복구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 그 구간은 마식령고개를 우회해야 했다. 마식령고개는 대관령 보다 경사가 급해 몹시 위험해 보였다.

심한 빗줄기에다 차가 덜컹거려 혼이 나긴 했지만 차 속에서 북녘 강원도 산골을 내다보는 맛은 또 그런대로 괜찮은 것이었다.

위험하다는 점에선 지난해 12월에 있었던 구월산 답사도 만만치 않았다.

잔설이 깔린 구월산 길을 굽이굽이 달리던 우리 미니버스가 경사를 더 올라서지 못하고 갑자기 미끄러졌다.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근처에서 도로 보수를 하고 있던 북한 군인들이 뛰어와 버스를 밀어준 덕에 우리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북한 군인들의 예기치 않은 도움을 받고 우리 일행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야릇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자동차 여행의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한 곳은 역시 원산 송도원에서 금강산 온정리에 이르는 구간의 도로였다.

그 길은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과 해송 숲을 끼고 내륙으로 잠깐씩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해안을 달리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라고 할 만했다.

원산 송도원과 명사십리를 지나 통천 못미쳐 시중호에서 잠깐 쉬어갈 때의 기분은 한마디로 그만이었다. 유적지를 찾아다니다 보니 북한의 지방도시며 산골도 많이 여행했다.

정방산 가는 길에 사리원시를, 구월산으로 가면서는 신천.은율을 지났고, 평양으로 돌아오는 길엔 서해갑문을 가로질러 남포시도 둘러봤다.

고려문화의 본산인 개성시 일원, 백상루가 있는 안주에도 갔다.

상원군 검은모루동굴이나 그 부근에 산재한 고인돌을 보러 가면서 귀일리.룡곡리 같은 산골마을에도 깊숙이 들어가 봤고, 고구려 고분벽화를 찾아나선 길에 평안남도 강서군이며 황해남도 안악군의 농촌마을에도 가 그곳 주민들의 생활을 눈짐작으로나마 헤아려볼 수 있었다.

한국인으로 북한에 가서 그렇게 많은 지방도시와 농촌을 돌아다닌 예는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다닌 찻길은 3차 방북의 경우만 따져도 2천3백여㎞에 달했다.

북측은 우리에게 15일간 승용차와 미니버스의 이용료로 미화 4천2백달러를 요구했고 우리는 기꺼이 값을 치렀다.

백두산 답사 때는 짧은 일정 때문에 평양~삼지연간을 운항하는 전세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42인승 AN24 전세기에 우리 일행 6명과 북측 안내원 (촬영기사 포함) 4명이 탔다.

왕복 1천2백㎞ 거리의 하늘을 나는 대가로 우리는 미화 3천3백달러를 지불했다.

평양 시내와 주변을 답사하면서 방문한 곳은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조선중앙력사박물관.민속박물관.미술박물관, 그리고 대동강 주변과 모란봉, 거기 즐비하게 늘어선 이름난 누 (樓) 와 정자들, 보통강 근처의 보통문, 고구려 산성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성산성, 그밖에 동명왕릉.정릉사. 단군릉.광법사. 룡악산 유적 등을 우리는 샅샅이 훑었다.

평양시내의 알려진 참관코스도 거의 다 둘러봤다.

주체탑.개선문.쑥섬혁명사적지. 인민대학습당.빙상관. 평양교예극장.평양산원. 평양제1고등중학교. 만수대창작사.수예연구소.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만경대학생소년궁전.지하철도 등등. 3차 방북 때 우리가 열심히 메모하는 모습을 보더니 북측 안내원들은 "이번 방북팀 만큼 열심히 기록하고 경청하는 경우는 처음" 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도 우리 언행이 무척 자유롭다고 느꼈는지 "이건 통일문화연구소 대표단이 아니라 '제멋대로 대표단' 이야요" 하며 즉석에서 조사단에 별명까지 지어 주었다. 물론 유쾌하게 웃는 분위기에서였다.

북한의 3대 명산에 가서는 가급적 여러 코스를 다 밟아보려고 애썼다.

묘향산에서는 보현사와 불교문화재 박물관이라 할 8만대장경보존고를 비롯해 만폭동.상원암.비로봉 등의 등산코스를 고루 다 올랐다.

금강산에서는 외금강의 비봉폭포.구룡폭포.상팔담이 있는 옥류동 계곡과 신계사터, 삼일포, 삼선암. 귀면암.만물상으로 이어지는 만물상 계곡, 그리고 온정리 쪽에 치솟아 있는 수정봉에도 올랐다.

최근 새 명소로 꼽히기 시작한 별 (別) 금강도 보았다.

수정봉에서는 일품이라는 동해 해돋이를 볼 작정이었다.

그래서 오전 3시에 산에 올랐다. 그러나 계속 쏟아지는 빗줄기 때문에 해돋이 촬영은 불발로 끝났다. 만물상 촬영은 더 힘들었다.

봉우리들을 가린 구름 때문이었다. 꼬박 네차례 등산을 한 끝에 마침내 만물상을 뒤덮은 구름을 단 7분동안 벗겨내는데 성공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답사할 수 있었던 내금강. 그곳은 장안사터.삼불암.백화암 부도밭. 표훈사.보덕암. 마하연.묘길상 등이 줄줄이 이어지는 불교문화재의 살아있는 보고 (寶庫) 였다.

더욱이 만폭동 계곡의 절경은 우리의 넋을 빼기에 충분했다.

백두산 천지는 물론 삼지연.천군바위.리명수폭포 등에도 가 보았다.

안개구름이 걷히고 천지가 잠시 얼굴을 보여줄 때는 벅찬 감격으로 숨이 멎는 듯했다.

백무고원의 원시밀림은 '한반도 안에 이런 곳이 다 있다니…'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북녘땅 곳곳을 차로 가며, 혹은 걸어가는 동안 한편으론 국토를 쪼갠 분단 현실에 새삼 가슴이 아려오기도 했다.

답사코스가 다양한 만큼 방북팀의 북한 체류기간도 길었다.

세차례를 다 합치면 40일이나 됐다. 북측 관계자들은 3차 방북에 15일 체류를 허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했다.

중앙일보 북한문화유산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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