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부치號 출범의미와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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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외상이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것은 일본이 아직 과감한 개혁 노선보다 기존 노선 속에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당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변화를 주문하는 여론에 부응, 한때 부상하던 '젊음' 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郎) 후생상과 '경제통' 가지야마 세이로쿠 (梶山靜六) 전관방장관이 파벌 위주의 기존 질서에 결국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부치 총재가 취임 일성으로 "일본경제 재건을 위해 원점부터 시작하겠다" 고 한 점은 그가 개혁을 위해 예상과 달리 적극성을 보이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돼 주목되고 있다. 선거는 싱겁게 끝났다.

과반수 (2백7표) 를 훨씬 넘긴 2백29표는 이번 총재 선출이 막후에서 이뤄진 주요 파벌간 타협의 산물임을 적절하게 보여준다.

'자민당의 새 얼굴' 을 내세운 고이즈미는 84표로 예상에 못미쳤고 '경제재건의 적임자' 를 자임하며 출마한 가지야마도 1백2표에 그쳤다.

경제계를 비롯한 일본 전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당 내부의 오부치 대세론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을 보여준다.

바로 이 때문에 오부치 체제는 출범 직후부터 '개혁을 통한 위기관리' 를 주문하는 경제계와 국민여론으로부터 거센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현재와 같은 난국에서 요구되는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할지에 회의적 시각이 많고 경제정책에 문외한이란 점도 약점으로 작용, 단명 (短命) 총리로 끝날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오부치가 파벌의 물밑 협상으로 총재에 선출된 만큼 당직 개편과 조각 (組閣)에서 파벌 안배는 불가피하다.

간사장을 비롯한 당 3역에 미쓰즈카 (三塚) 파의 모리 요시로 (森喜朗) 총무회장, 미야자와 (宮澤) 파의 이케다 유키히코 (池田行彦) 전외상, 옛 와타나베 (渡邊) 파의 후카야 다카시 (深谷隆司)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내각에는 당내 거물을 전진배치시켜 시장을 안정시키고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경선에서 탈락한 가지야마가 대장상에 기용되고,가토 고이치 (加藤紘一) 간사장이 외상으로 옮길 전망이다.

오부치는 일단 경기대책.불량채권 처리 등 경제회생 정책의 강도를 높일 뿐 '하시모토 노선' 을 고수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 등 야당은 국회해산과 총선거 실시를 요구하면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간 나오토 (菅直人) 대표를 총리후보로 내세우기로 하고 공산.공명.자유당에 지지를 요청했다.

야당은 총재경선 후유증으로 자민당에서 적지 않은 이탈표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민당 분열에 따른 중의원 해산→총선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쿄 = 이철호.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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