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동대문]시장디자이너들 펄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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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최근 IMF한파로 대기업 브랜드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남대문.동대문 의류시장의 약진이 눈길을 끌고 있다.

잠뱅이.옹골진 등 소위 '남대문 브랜드' 가 중저가를 무기로 인지도를 높여가면서 명동의류 점포는 물론 롯데.미도파 등 유명 백화점 진열장까지 넘보고 있는 것. 한 대기업 의류마케팅 담당자는 "최근 남대문시장 제품들이 일본 최신 제품의 디자인을 단숨에 따라잡을 만큼 유행에 앞서간다" 며 "유명 브랜드들도 이들의 움직임에 긴장할 정도" 라고 말했다.

그는 시장의류의 경쟁력을 해외유학파까지 대거 포진한 '시장 디자이너' 의 저력에서 찾는다. 시장 디자이너들은 얼굴도 이름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매일같이 새로운 옷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유명 브랜드의 옷이 나오면 다음날로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내놓는 등 뛰어난 '순발력' 을 자랑한다.

남대문시장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최영은 (崔英恩.28) 씨의 일과는 시장 디자이너 생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崔씨는 매일 오전 8시 서울 광장시장에서 그날 쓸 옷감을 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원단을 사서 공장으로 배달시키고, 공장에 들러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만들도록 지시한 뒤 공장을 나서는 것이 오전 11시. 이 옷들은 그날 오후 9시면 자신에게 일을 맡긴 삼익패션타운의 한 옷가게에 내걸리게 된다.

오전 일이 끝나면 崔씨는 브랜드와 시장 옷이 한꺼번에 모이는 명동으로 나간다. 그날 새로 나온 옷들을 확인하고, 새 제품에 대한 반응을 살피는 '작품헌팅' 을 하는 것이다.

오후 2시쯤 헌팅을 끝낸 뒤에는 '느낌이 오는 옷' 을 새로 디자인, 다음날 시장에 내걸 샘플까지 제작해야 하루 일과가 끝난다.

崔씨는 디자인학원을 졸업한 뒤 의류회사에 1~2년쯤 근무하고 시장으로 뛰어든 '학원파' .그러나 의류업계가 불경기를 타기 시작했던 지난해부터 '해외유학파' 가 대거 입성하기 시작하면서 시장 내에서의 경쟁도 눈에 띠게 치열해졌다.

지난해 파리에서 5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길자 (金吉子.35) 씨. 그녀는 귀국 후 한 무역회사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얼마전 남대문시장내 '메사' 의 점포를 분양받고 자기 브랜드개발에 들어갔다.

평화시장에서 부인복 점포를 운영하는 맹경숙 (孟璟淑.29) 씨도 파리에서 3년간 유학한 뒤 곧바로 시장으로 뛰어든 경우. 6개 정도의 하청공장을 두고 디자인부터 원단구매.생산.판매까지 혼자 맡아하고 있다.

현재 수천명으로 추산되는 이들 시장 디자이너는 ^옷가게와 계약을 맺고 일감을 받아오는 프리랜서 ^3~4개 옷가게에 고용된 전속 디자이너 ^옷가게 운영까지 맡는 월급사장 디자이너 ^자기점포를 운영하는 오너 디자이너 등 유형이 다양하다.

양선희.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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