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누락' 누구 말이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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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해군)를 기만하는 송신이어서 보고하지 않았다."→"북한 경비정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누락했다."→"해군 작전사령관의 단순한 판단착오였다."→"합참에 보고하면 사격중지 명령이 내려올까 우려해 고의로 누락했다."

북한 경비함의 지난 14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과 관련, 해군작전사령관이 북한의 송신 사실을 합동참모본부에 보고하지 않은 이유를 두고 국방부의 해명이 수시로 바뀌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23일 오후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언론에 발표하면서 "해작사령관의 판단 착오"라고만 밝혔다. 그러나 같은날 오전 청와대 보고와 24일 국회 국방상임위 보고에서는 "해작사령관이 합참에 보고하면 사격중지 명령이 내려올까 우려해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보고 누락의 원인이 해작사령관의 판단 착오냐, 고의에 의한 것이냐는 사건의 성격을 가르는 본질적인 문제다.

◆ 언론 발표와 국회 보고는 왜 달랐나=국방부는'고의적 보고 누락'이 23일 진상 발표 때 빠진 것에 대해 "정부 합동조사 내용을 요약 발표하는 과정에서 제외됐다"고 해명했다. 박정조 합동조사단장은 "해작사령관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한 개인적인 변명을 한 것이어서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이유를 댔다. 대신 기자들의 질문이 있으면 답변하려고 준비는 해놨었다고 주장했다. 기자들이 질문을 안 해서 공표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반면 24일의 국회 보고는 국방위가 갑자기 소집되는 바람에 합동조사단의 조사 내용을 요약하지 않고, 해작사령관의 진술까지 있는 그대로 다 실어 보고했다는 것이다. 보고 대상과 준비 시간의 차이 때문에 언론 발표와 국회 보고가 달랐을 뿐 다른 의도가 없었다는 게 국방부 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사건의 성격을 달리 보이게 할 수 있는 주요 내용이 언론 발표에서 빠진 것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청와대 측의 미묘한 관점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23일 있었던 국방부의 언론발표문은 거의 청와대 주도로 작성됐다. 반면 24일 있었던 국회 보고는 합동조사단의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조영길 국방부 장관의 판단과 주장이 강하게 드러났다. 청와대는 고의적인 보고 누락 대목을 전면에 부각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란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 청와대, 고의 누락인데 왜 경고만 했나=청와대는 고의 누락을 포함한 모든 진상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군의 사기를 고려해 경고 수준으로 징계 수위를 낮췄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과 군 일각에선 고의 누락 사건이 전면에 부각될 경우 현장의 군이 청와대.국방부 등 상부의 정치적 고려를 의식해 작전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부담스러워 공식적인 언론 발표에선 빼도록 했을 것이란 분석을 한다.

◆ 조 장관, 왜 뒤늦게 공개했나=조 장관은 국회 보고에서 해작사령관이'단순 판단착오'에 따른 누락보다는'합참으로부터 사격중지 지시를 우려해 누락했다'는 대목을 강조했다.

합참의장을 지낸 조 장관으로선 일선 지휘관인 해작사령관이 합참의 의도나 언론의 영향 등 정치적인 점을 고려했다는 진술을 그대로 두고 넘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노 대통령에게 중징계를 건의했다가 경징계로 수위가 낮아지면서 군내 일각에서 '군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비난이 불거졌고, 이는 국방부 장관의 장악력을 훼손하는 사태로 판단했을 수 있다. 따라서 중징계를 건의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해명할 필요를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 NLL 사수 의지도 영향=합조단의 조사 내용에 따르면 해군은 당시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함 등산곶 684에 대해 적개심을 가졌다고 한다. 2002년 서해교전 때 우리 고속정을 대량 포격해 6명의 사상자를 낸 경비함이다. NLL 사수가 작전 임무인 해군은 합참 이상의 지휘부가 남북 화해를 내세워 우리 군의 안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명령을 내릴 것을 지레 우려했다는 것이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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