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축구 승부조작설 규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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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 축구계를 비난한 차범근 (車範根) 전 월드컵 대표팀 감독의 발언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그는 국내 프로축구 승부가 조작되고 있다고 말했는가 하면 프랑스 월드컵에 파견됐던 축구협회 기술위원들을 '파리떼' 로 비유했다.

또 정몽준 (鄭夢準) 축구협회 회장이 국제축구연맹 (FIFA) 회장 선거에서 줄을 잘못서는 바람에 우리나라가 심판 판정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우리나라 축구계는 정치판처럼 썩었다고 비난하고 자신이 중국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본선에 참가하면 한국팀이 두려워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충격적인 내용이다. 모두 그럴 듯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어느 것 하나 딱부러지게 확증이 있는 부분도 없다.

그는 부인과 함께 가진 월간지와 인터뷰에서 이같은 내용을 밝힌 후 프로축구팀 감독을 맡고 있는 중국으로 떠나버렸다.

때문에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근거.증거가 있는지 당장 확인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다만 월드컵 본선 진행중 감독직에서 도중하차됐기 때문에 그의 심기가 편치 않을 것이란 점은 짐작할 수 있고 또 감독 경질은 잘못이었다는 여론이 상당히 높았었던 것도 사실이다.

차범근 감독은 한국 축구를 대표할 만한 인물중 한 사람이다.

오랫동안 국가대표선수를 지냈고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한국 축구의 자존심' 으로 활약한 스타플레이어였다. 무엇보다 프랑스월드컵 대표팀 감독으로 '1승' '16강' 이란 목표에 모두 실패한 패장 (敗將) 이 아닌가.

공인 (公人) 신분인 그가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한국축구와 축구인 모두를 향해 악의에 찬 비난발언을 한 것은 '누워 침뱉기' 로 경솔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축구계도 반발만 하지 말고 車감독의 발언을 겸허하게 하나하나 짚어봐야 한다.

아울러 축구인들은 왜 그가 지적한 문제들이 상당수 사람들의 수긍을 얻고 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2002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경기력 향상에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운동 경기의 승부조작 의혹은 팬들을 외면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프로축구 승부조작설은 참으로 믿기 힘든 일이지만 우리나라 축구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므로 하루빨리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자칫 프랑스월드컵 이후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한 축구 열기에 승부조작설이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체 조사가 어렵다면 특별조사 기구를 구성해서라도 어물쩍 넘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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