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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생물표본 7000점 외국서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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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과거 혼란기에 해외로 반출됐던 한반도 생물 표본 520점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은 지난해부터 일본 국립과학박물관, 미국 하버드대 표본관과 아널드수목원,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헝가리 자연사박물관을 방문 조사했다. 그 결과 한반도산 생물표본 7000여 점이 소장돼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 중 520점을 기증받았다. 해외로 유출된 표본이 돌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884년 한 미국인이 부산에서 채집한 쇠황조롱이 기준표본으로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다(사진上). 아래 왼쪽은 1932년 일본 채집가 오이 지사부로가 함경남도 장진군에서 채집해간 현호색속 식물로 현재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아래 오른쪽은 헝가리 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라애기밤나방 기준표본.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일본국립과학박물관에서는 한반도산 고등식물 표본 1500여 점 과 지의류(地衣類·곰팡이와 조류(藻類)의 공생체) 표본 600여 점의 사진과 채집 정보가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기준표본은 ‘생물의 주민등록등본’이라 할 수 있는 원조 표본으로 생물의 이름을 지을 때 기준이 된다.

하버드대 표본관에서는 고등식물 263점, 아널드수목원에서는 고등식물 263점,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는 척추동물 2200여 점, 헝가리자연사박물관에서는 곤충표본 2433점의 사진과 채집 정보를 확인했다. 확인된 표본 중에는 1800년대 한반도에서 채집됐지만 지금은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종어·크낙새·따오기 등 중요한 종이 다수 포함돼 있다.

유호 국립생물자원관 고등식물연구과장은 “확인된 표본은 고등식물부터 조류·곤충류까지 다양하다”며 “식물들은 아직 재배되고 있거나 도화지에 납작하게 붙은 채로 보존된 상태였으며, 어류는 알코올과 같은 특수 액체에 담겨 있는 등 원형이 대체로 잘 유지돼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들어온 520점(지의류 200점, 곤충류 320점)에는 기준표본 2점이 포함돼 있다. 하나는 일본에서 돌아오는 지의류표본으로 설악산 백담사 계곡에서 채집됐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헝가리 학자가 북한에서 채집해 간 불개미류 곤충이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해외로 반출된 생물 표본은 약 5만여 점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상당량이 반출됐다. 경희대 지리학과 공우석 교수는 “일본은 식민지 자원 확보를 위해, 미국·유럽 등지의 학자들은 연구 목적에서 한반도 전역에서 생물 표본을 채집해 갔다”며 “70~80년대만 해도 미국 농무부 등 요청으로 국내 학자들과 공무원들이 표본을 수집해 보내거나 미국 학자들의 채집을 도왔다”고 말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2017년까지 영국·프랑스 등 15개국을 돌며 표본조사를 계속할 예정이다. 박종욱 국립생물자원관장은 “생물다양성협약을 맺으면서 생물자원 전쟁의 시대가 다가왔다”며 “교배와 접종을 통해 어떤 새로운 종이 탄생할지, 또 그 종이 어떤 상업적 가치를 지닐지 모른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학자 윌슨이 1918년에 금강산에서 채집해 간 만리화는 다른 종과의 교배를 통해 내한성(耐寒性)이 강한 새로운 품종으로 개발돼 상품화됐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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