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란한 입심 현란한 솜씨로 세상을 조롱한 사람, 로알드 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그의 작품 세계 로알드 달은 ‘재미있는 동화작가’의 대명사다. 『마틸다』와 『찰리와 초콜릿 공장』, 『멍청씨 부부 이야기』와 『멋진 여우씨』『우리의 챔피언 대니<그림>』 등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하나같이 뒷얘기가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과감한 상상력과 유머가 반짝반짝 빛나기 때문이다.

그가 글을 쓸 때 경쟁자는 TV였다고 한다. “옆방에 TV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아이들을 책에 붙잡아 두는 게 정말 어려운 일 아니냐”라고 말했으니까. 그의 책이 어른 아이 할것 없이 모두에게 짜릿한 재미를 주는 건 아마도 작가의 이같은 고민의 소산일 것이다.

그는 어린이들이 책을 보면서 절대로 위축되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교훈과 감동은 철저히 재미 뒤에 숨겼다. ‘골탕 먹이기’는 로알드 달이 주로 사용한 도구였다. 대상은 대부분 어른들. 이해심 없고 성격 고약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강요하는 어리석은 인물들이다.

『마틸다』의 교장 선생님과 『멋진 여우씨』의 농장 주인 등이 바로 그런 악역이다. 로알드 달 작품의 결론은 철저한 ‘권선징악’. 부패한 권위에 대한 조롱과 기성 세대를 향한 냉소적인 시선이 배어있는 결말이다. 나쁜 어른 때문에 곤경에 빠졌던 착한 주인공의 통쾌한 복수다. 그 방법은 늘 재밌다. 주인공의 기발한 꾀에 반전과 반전이 이어진다.

로알드 달이 어린이책을 본격적으로 쓰게 된 계기는 자기 아이들에게 잠자리에서 들려줄 이야기를 만들면서부터라고 한다. 독자 수는 예상을 크게 넘어섰다. 1988년 영국에서 첫 출간된 『마틸다』는 6개월 동안 50만부 넘게 팔렸다. 당시 영국의 모든 어린이 책 판매 기록들을 갈아 치웠다.

그가 남긴 20권의 어린이책은 현재 30여개국에 번역돼 전세계 아이들과 기쁘게 만나고 있다.

이지영 기자



◆로알드 달의 작품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권민정 옮김, 강, 328쪽, 1만원)=‘귀찮은 일을 할 바에는 욕 좀 얻어먹고 마는 게 낫다’는 좌우명을 가진 돈 많은 귀족 백수가 주인공인 표제작, 사회적 신분이 다른 저널리스트와 노동자, 교통경찰의 대립이 흥미로운 ‘히치하이커’ 등 이야기꾼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단편 모음.

▶맛(정영목 옮김, 강, 353쪽, 1만원)=포도주 이름 맞히기 내기에 관한 절묘한 이야기 ‘맛’을 비롯한 열 편의 단편을 수록했다. 소설가 성석제가 “소설의 서열을 매기라 한다면 로알드 달의 소설을 다섯 손가락 안에 놓겠다”고 추천했을 정도로 상상력과 반전이 뛰어난 작품들이다.

▶당신을 닮은 사람(윤종혁 옮김, 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376쪽, 7800원)=달의 두 번째 단편집으로 ‘에드거 앨런 포’상을 받은 추리작가로서의 솜씨를 즐길 수 있는 단편집. 상상력만으로 공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주제를 변주한 15편의 단편이 실렸다.

▶마녀를 잡아라(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시공주니어, 282쪽, 7000원)=하루 아침에 부모를 잃고 생쥐가 되어버린 주인공이 아이들만 없애는 마녀를 찾아 소탕하고 사람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주인공 꼬마와 할머니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손에 땀을 쥐면서 시간을 잊을 정도로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