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정치인 처리 어떻게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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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태정 (金泰政) 검찰총장의 '비리 정치인 리스트 확보' 발언으로 여의도에 싸늘한 긴장감이 감돈다.

검찰총수가 청구.기아비리 등에 정치권이 연루됐음을 공개리에 언급한 이상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수는 없게 돼버린 탓이다.

때문에 정치권은 "검찰이 비리연루 정치인들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까" 를 탐문하느라 안테나를 풀가동하고 있다.

분위기나 상황이 예전과는 사뭇 다름을 직감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여권은 표면적으론 "검찰이 알아서 하는 일" 이라며 정치적 고려가 있을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 등 여권 핵심부는 "각종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에 대한 계좌추적이 진행중이며 확실한 증거가 확보되면 본격적인 소환조사를 거쳐 사법처리될 것" 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기업총수를 비롯, 사회지도층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사정 (司正) 이 이뤄지고 있는 마당에 가장 먼저 개혁해야 할 정치권의 비리를 덮어두고 넘어간다면 어느 누가 정부의 개혁에 설복되겠느냐는 얘기다.

실제로 여권 내부에선 오래 전부터 청구.기아는 물론 종금사.개인휴대통신 (PCS) 인허가 비리 수사과정에서 정치인 상당수가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확인됐으며 관련자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명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문제의 핵심은 연루 정치인들을 어느 선까지 처리하느냐는 기준설정이며 여권의 고민도 바로 이 대목이다.

거명된 인사를 예외없이 사법처리할 경우 정치보복으로 비춰는 것은 물론 자칫 정치판 전체가 깨지는 상황으로 몰릴 가능성도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 고 얘기한다.

부실기업과 은행 퇴출, 대대적인 공직사정, 해외로 재산을 빼돌린 기업총수들에 대한 사법처리 등 나라 전체가 시끌시끌한 와중에 정치권까지 끌어들일 경우 감내키 어려운 충격과 파장을 초래할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또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정기국회도 사법처리를 미루도록 하는 요인이다.

현역의원의 회기중 구속은 여러모로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인 사법처리가 여권이 추진중인 정계개편과 연결될 것으로 비치는 것도 여권으로선 부담으로 느끼고 있다.

따라서 사법처리 시기는 재·보선 이후 정계개편은 물론 정기국회가 끝나는 연말이 적절하다는 게 여권 핵심부의 공통된 견해다.

문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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