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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 받기 까다롭고 하소연할 곳도 없어 더 슬픈 영세기업 비정규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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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비정규직 고용기간 제한(2년) 적용 첫날인 1일 해고된 산재의료원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서울 영등포 산재 의료원 로비에 모여 향후 대책을 듣고 있다. [김태성 기자]

대구의 한 헬스시설에서 3년간 계약직 코치로 일하다 지난달 30일 해고된 김모(41)씨. 그는 그날 “더 이상 일하기 힘들 것 같다”는 사장의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아무 말을 할 수 없었고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김씨는 “(근로)계약서가 있나, 고용보험이 있나, 월급명세서가 있나. 아무것도 없다. 우리 같은 사람은 잘리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회사에서 4대 사회보험을 들지 않았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받을 길이 없다. 생계가 막막하다. 실업급여를 받을 길이 영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려면 고용보험 미가입 사실을 노동청에 신고해야 하고 근로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김씨는 “사장과 한 번 다투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이 바닥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책이 없다”고 한숨지었다.

비정규직 해고가 줄을 잇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영세기업 근로자들은 더 서럽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 규모가 있는 데서 일하던 비정규직은 그나마 법적 투쟁에 나서거나 집회와 시위로 항의하고 있다. 농협·보훈병원·KBS·산재의료원 등이 그런 곳이다. 하지만 영세기업 비정규직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다. 소리 없이 해고되고 소리 없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실업급여를 받기가 힘들다. 비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고용보험에 가입된 근로자는 10명 중 4명(39.2%)에 불과하다. 건강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44.2%에 지나지 않아 치료받기가 쉽지 않다. 국민연금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2일 서울남부고용지원센터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한 140여 명 중 비정규직 근로자는 1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정규직이었다.

서울 영등포의 한 학원에서 1년7개월 근무한 조모(31·여)씨는 지난달 중순 서울남부고용지원센터를 찾았다. 학원 측이 고용제한기간(2년)을 채우기 전에 미리 해고하는 바람에 실업급여를 받으러 왔다. 하지만 학원 측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실업급여를 타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조씨는 “학원이 세금을 내기 힘들 정도로 영세했기 때문에 원망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생활을 꾸려 나가기 위해선 실업급여를 타야겠다”고 말했다. 조씨는 학원을 고용보험 미가입 사업장으로 신고하고, 이직확인서를 받는 등의 절차를 밟고 있다.

비정규직이 몇 명 되지 않는 사업장 근로자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 인력개발원에 근무하는 직원은 해고 통보를 받고도 상의할 데가 없어 혼자 전전긍긍하고 있다. 서울시 간호조무사회 정은영 사무국장은 “병원들이 간호조무사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데가 많은데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많아 해고를 당해도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노동부 허원용 고용평등정책관은 “지방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이 일일이 중소기업을 찾아다니거나 전화로 문의하지만 비정규직 해고 상황을 알려주는 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기찬·김은하·강기헌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실업급여를 받으려면=최근 18개월 내 180일을 일한 사실이 있고, 고용보험에 가입했어야 한다.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은 고용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가입돼 있지 않으면 노동부나 지방노동청, 고용지원센터에 해당 사업장을 신고하고, 거기서 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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