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US오픈 우승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그는 작았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컸다.

그는 마치 골프의 마술사 같았다.

그의 손끝에서 연출되는 샷의 향연은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프로데뷔 첫 해에 메이저대회 2연승의 신화를 창조한 '슈퍼루키' 박세리 (21.아스트라) 선수. 그는 척박한 국내 골프 풍토에서 성장, 세계 최강의 골프무대를 맨발로 정복한 진정한 '골프영웅' 으로 다시 한번 태어났다.

7일 새벽 잠을 고스란히 설치게 한 朴선수의 당당한 승리모습은 IMF사태로 시름을 앓고 있는 국민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모처럼 환한 웃음을 선사한 최고의 값진 선물이었고 프랑스 월드컵에서 태극전사들이 사상 첫승 및 16강 진출을 이루지 못한 허탈감을 날려버린 쾌거였다.

또 朴선수가 초반 5번홀까지 4타차로 뒤졌던 '역경' 을 뒤엎고 극적으로 역전승을 일궈내는 모습에서 우리는 "하면 된다" 는 자신감과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朴선수의 우승은 지난 5월 LPGA챔피언십 제패에 이어 불과 50여일만에 세계 여자 4대 메이저대회 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작성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더욱이 골프에 대해 자존심이 강한 백인들 틈에서 동양의 작은 소녀가 미국 골프대회의 자존심으로 일컬어지는 US여자오픈 우승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것은 세계 골프계를 경악케 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골퍼들의 꿈인 메이저대회 우승을 프로데뷔 첫해에, 그것도 첫 2승을 모두 메이저대회로 장식했다는 점에서 세계골프 역사상 불멸의 기록으로 남게 됐다.

골프 역사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朴선수는 우선 동양인 최초 우승 외에 사상 처음으로 프로데뷔 첫해에 메이저대회를 연속 제패한 기록을 남겼고 투어진출 2승을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장식한 1호 선수로 등록됐다.

미국골프는 朴선수의 등장으로 역사적인 전기를 맞게 됐다.

80년대초 낸시 로페스 이후 걸출한 스타 부재로 침체에 빠졌던 미국 여자골프는 새로운 활로를 되찾게 됐다.

국내에는 골프붐이 조성돼 관련산업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박세리 특수' 로 골프장과 연습장이 늘어나고 첨단 골프채.의류.신발개발 등 연관효과가 커 엄청난 부가가치를 유발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더불어 아직도 사치성 스포츠로 인식, 일부 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골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종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