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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게 시작한 녹색금융 상품 “돈 필요한 녹색기업 어디 없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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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에 발맞춰 시중은행들이 쏟아낸 ‘녹색금융 상품’의 판매 실적은 어느 정도일까. 예·적금 상품은 그나마 고객의 관심을 끌었지만 대출 상품은 신통치 않은 수준이다. ‘녹색산업’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인 데다 아직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29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우리·신한·하나·기업·외환은행·농협 등 7개 은행이 내놓은 녹색금융 상품의 판매 실적은 지난 24일 현재 예·적금이 3조원, 대출은 8000억원 정도였다. 친환경·신재생에너지·저이산화탄소 산업을 지원할 실탄은 마련했지만 막상 이를 쓸 곳은 많지 않았던 셈이다.

기업은행이 청정에너지 산업과 하이브리드 차 산업에 지원하는 ‘녹색성장기업대출’은 최근 3개월 동안 3909억원(1342건)이 나갔다. 친환경 제품 등을 만드는 기업과 신재생에너지 전문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은행의 ‘KB 그린 그로스 론’은 지난 4개월 동안 1621억원이 대출됐다.

하지만 나머지 대출 상품의 실적은 100억원 안팎이다.

지난 4월 시판한 외환은행의 ‘녹색기업파트너론’의 대출 실적은 121억원이다. 우리은행이 발광다이오드(LED) 관련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3월부터 판매한 ‘우리 LED론’의 취급액은 116억원에 그쳤다. 태양광 분야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8월 출시된 기업은행의 ‘태양광발전소 건설자금 대출’은 153억원, 신한은행이 2월부터 내놓은 ‘신한솔라파워론’은 93억원이 나갔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상 기업이 많지 않아 대출액이 그리 크지 않다”고 말했다.

녹색금융의 성패는 은행들이 유망한 녹색기업을 제대로 찾아내 적절한 지원을 할 수 있느냐다. 금융권은 4월 말 녹색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은행·증권·보험·카드사를 총망라한 녹색금융협의회까지 발족했다. 실무작업반을 만들어 오는 9월까지 녹색금융 정책과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녹색금융이 슬로건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치밀한 전략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특히 녹색산업 관련 기업은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벤처기업과 유사하기 때문에 잘못 대출하면 은행이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금융연구원 구정한 연구위원은 “녹색기업 인증제 같은 것을 도입해 은행들이 지원할 수 있는 기업을 쉽게 선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은행들도 녹색기업을 제대로 심사하고 관련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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