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 제3의 투자자 유치 여의치 않자 매각으로 급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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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2006년)과 대한통운(2008년) 등 굵직한 인수합병(M&A)전에서 잇따라 성공하며 재계 순위 9위(자산기준·공기업 제외)로 올랐다. 그러나 6조4225억원을 주고 인수한 대우건설은 지난해 말 불어닥친 세계적 금융위기와 함께 줄곧 그룹에 재정적 부담이 됐다. 특히 재무적 투자자에게 3조5000억원을 지원받으면서 맺었던 ‘풋백옵션’이 부메랑이 됐다.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을 주당 2만6262원에 인수하면서 주가가 올해 말 기준으로 3만1500원을 밑돌면 차액을 메워 되사 주기로 투자자들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대우건설 주가는 지난해 급락하기 시작해 26일 종가로 1만2850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주가 수준이 연말까지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금호아시아나가 투자자에게 물어 줘야 할 돈은 4조원에 육박한다.

금호아시나아는 채권단에 풋백옵션 행사 기한을 늦춰 줄 것을 요청했다. 채권단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그룹은 다음 달 말까지 새로운 투자자를 물색하되, 이에 실패할 경우 대우건설을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펀드에 매각하기로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기도 했다.

◆왜 방향 급선회했나=이달 초만 해도 금호아시아나 측은 “제3의 재무적 투자자를 찾았고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호아시아나는 3월부터 국내외에서 컨소시엄을 이룬 복수의 재무적 투자자와 협상해 지난달 중순 투자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고 28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제3의 투자자’가 제시한 대안이 문제였다. ‘제3의 투자자’는 금호산업이 대우건설 주식과 바꿀 수 있는 교환사채(EB)를 발행하면 이를 사 주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사채 발행으로 그룹의 부채가 증가한다는 점이 문제로 대두됐다. 익명을 요구한 채권단 관계자는 “금호의 구조조정은 재무건전성이라는 원칙을 지키면서 진행돼야 한다”며 “권장 부채비율 200%를 넘어서는 재무구조 개선 방안은 채권단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그룹은 결국 대우건설을 되팔기로 결정했다. 금호아시아나 입장에서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사모펀드에 대우건설을 매각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는 상태다. 금호아시아나는 한때 대우건설 대신 대한통운 매각도 검토했었다. 익명을 요구한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금호산업으로 바로 현금이 들어올 수 있는 대우건설 매각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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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의 앞날은=금호아시아나가 대우건설을 사들인 가격은 6조4225억원. 현재의 금융 상황에서 시공 능력 1위의 대우건설을 매물로 내놓더라도 제값을 받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렇게 될 경우 그룹 계열사들의 커다란 투자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대우건설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는 금호산업(18.6%)·금호타이어(5.6%)·금호석유화학(4.5%)·아시아나항공(2.8%)·금호생명(1%) 등이다. 이들의 손실이 그룹 전체의 경영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이 대규모의 매각손실을 떠안을 경우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금호아시아나가 마지막까지 대우건설 매각에 주저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지분교환 작업 등 여러 방안을 놓고 채권단과 긴밀히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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