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이창호 9단, 또 … 세계대회 6연속 준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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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9단이 또 졌다. 24일 중국 쓰촨성 청두(成都)에서 열린 7회 춘란배(우승상금 15만 달러) 결승 2국에서 이 9단은 중국의 창하오 9단에게 176수 만에 불계패하며 0대2로 무릎을 꿇었다. 아쉬운 패배였다. 이번처럼 이창호 9단의 승리를 고대한 적은 없었다. 세계대회 무관의 이 9단이 다시 왕관을 쓰며 신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하나 바로 그러한 팬들의 염원 탓인지 이 9단은 생전 처음 승부의 중압감에 시달렸고, 그 무거움은 고스란히 판에 투영됐다.

세계대회 우승에 목말랐던 이창호 9단(左)이 이번에도 갈증을 채우지 못했다. 전성기 때 10연속 우승까지 일궈냈던 그가 여섯 번째 준우승에 머무르자 기자들이 우승자 창하오 9단을 제쳐놓고 이창호 9단에게 마이크를 집중하고 있다. [사이버오로 제공]

22일의 1국(백)은 초반 불리, 중반 우세, 종반 역전의 수순 끝에 241수 만에 불계패했다. 팻감을 잘못 쓴 것이 패인으로 지목되었다. 24일의 2국(흑)은 결정적인 수읽기가 간발의 차로 빗나가고 말았다. 초반 우세를 확보한 이 9단이 조금 늦추는 사이 창하오는 순식간에 집으로 앞서 나갔고 이로부터 흑의 공격과 백의 수비가 치열하게 맞섰는데 결국 이창호의 창이 부러지고 만 것이다. 대국장은 제갈량의 사당인 무후사(武侯祠). 수 대결의 장소로는 최적이었으나 운이 따르지 않았다. 종반의 사신이라는 이창호가 결과적으로 두 판 다 역전당했다. 일은 사람이 만들지만(謀事在人) 성패는 하늘이 정한다(成事在天)고 했던 제갈량의 말을 다시 되새기게 하는 승부였다.

이로써 이 9단은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6년 이후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6번 연속 준우승이다. 1992년 17세의 나이로 세계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머쥐었던 이창호는 이후 세계대회 결승에서 10연속 우승을 거둔다. 국내 결승전을 포함하면 20연속 우승의 기록도 있다. 이번 결승에서 상대했던 창하오 9단과의 공식 대국에선 97년부터 3년간 무려 12연승을 기록했고, 통산 전적에서도 90%의 승률을 올렸다. 이로 인해 중국의 일인자였던 창하오는 깊이 절망했고 영영 사라지는 듯 보였다(이 무렵부터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너무 많이 이겨 승리조차 무덤덤해진 이창호, 하도 많이 져 패배조차 무감각해진 창하오.

하나 2005년 무렵부터 형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는 게 진정 신기하다. 사실은 창하오가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고 그는 말했다. 세계대회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던 그는 이때부터 응씨배·삼성화재배 등에서 잇따라 우승했고 이창호에게도 이번 결승전을 포함해 통산 6승2패로 앞서게 됐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이창호 9단의 신화 역시 아직 끝났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박치문 전문기자

<결승 2국 승부처>

○ 창하오 9단 ● 이창호 9단

백△ 11점이 죽느냐, 흑의 포위망이 깨지느냐. 수읽기가 정면으로 충돌해 쌍방 호랑이 등에 탄 형세다. 백△들은 3수. 그렇다고 백이 A로 두는 것은 흑B로 그만이다. 축이 안 된다. 그런데 백1이 있었다. ‘하수의 마늘모’라지만 이 장면에선 승부를 결정짓는 맥점이 되었다. 흑C면 백A로 잇기만 해도 이번엔 흑이 한 수 부족이다. 이후 이창호 9단은 좌하 대마를 잡으러 갔으나 실패하자 돌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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