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천개 부품 피아노 탄생 3백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6면

가장의 갑작스런 정리해고로 집과 피아노까지 팔아야 하는, 단란했던 한 가정의 슬픈 이야기. 몇달 전 방영됐던 TV드라마 '피아노' 다.

왜 하필 제목이 '피아노' 일까. 피아노처럼 단란한 가정, 중산층의 꿈과 희망을 잘 요약한 단어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목소리보다 더 부드럽게 속삭이고 바이올린보다 더 감미롭게 노래할 수 있는 악기' '가정용 오케스트라' '악기의 왕' '음악교육의 센터' '중산층의 교양을 상징하는 악기' …. 바로 올해 탄생 3백주년을 맞는 피아노를 가리키는 말이다.

로시니는 이 악기를 가리켜 "천둥소리처럼 강하고 봄밤의 나이팅게일처럼 아름답다" 고 말했던가.

오케스트라를 능가하는 음량, 방대한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피아노는 지금도 '악기의 왕' 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피아노를 발명한 사람은 이탈리아인 바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 (1655~1731) .하프시코드 제작자로 피렌체 토스카나 공국의 페르디난드 소유의 악기를 수리.조율하는 일도 맡았다.

피아노의 생일은 1709년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연도는 마르키스 마페이가 '이탈리아 문학잡지' 에 이 새로운 악기를 '클라비쳄발로 콜 피아노 에 포르테' (강약을 구사할 수 있는 건반악기) 로 처음 소개한 해다.

크리스토포리가 피아노의 핵심인 현을 망치로 때려 소리를 내는 기계장치 (액션) 를 처음 개발한 것은 1698년.

발명 즉시 특허를 따고 대량생산에 돌입한 것은 아니었다. 마르페이가 도면과 함께 소개한 피아노를 눈여겨 본 독일의 악기제조업자 하인리히 질버만이 본격적인 기술 개발에 착수한 것. 크리스토포리가 만든 피아노는 현재 두대만 남아 있는데, 1720년에 제작된 것이 뉴욕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1722년 산이 로마 악기박물관, 1724년 산이 라이프치히대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크리스토포리는 피아노가 별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자 클라비코드 제작으로 여생을 보냈다.

피아노의 고향은 이탈리아이지만 독일과 영국에서 뿌리를 내렸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중산층의 발달과 실내문화를 발달시킨 북유럽의 궂은 날씨를 그 이유로 꼽는다.

연주를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냥 거실 한복판에 놔두더라도 가정의 교양과 수준을 말해주는 '가구' 인 피아노는 물질적 풍요에 대한 만족감, 안정된 삶의 상징이었다.

1800년 첫선을 보인 업라이트 피아노는 좁은 주거공간에 맞게 액션과 현을 수직으로 세우고 고음부와 저음부를 나누어 현을 서로 교차시킨 것. 이밖에도 장롱.화장대.탁자.재봉틀.책상 겸용 피아노 등 이색 피아노들이 속출했다.

사람이 눕기만 하면 저절로 연주를 시작하는 피아노가 달린 침대도 나왔다.

맨처음 피아노 독주회를 개최한 사람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 1840년 6월9일 런던에서 '리사이틀' 이라는 제목의 음악회를 열어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88개의 건반, 8천여개의 부품이 소요되는 정밀기계인 피아노는 라디오.TV에게 안방문화의 센터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다.

전자악기의 등장으로 그 자리가 위협받고 있지만 21세기에도 피아노는 음악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