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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약세 대책 의미·전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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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가 엔화 약세에 맞춰 원화환율의 상승 (평가절하) 을 용인키로 한 것은 아시아 통화의 전반적인 약세가 대세 (大勢) 라는 판단에서다.

아시아 경제가 취약한데다 미국과 일본이 내심 엔화 약세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16, 17일 엔화가 반등했으나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원화환율도 '대세' 에 맞춰 유연하게 조절해간다는 것이다.

지난해 원화환율의 상승을 억지로 막았다가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고, 결국에는 한꺼번에 치솟으면서 외환위기를 맞았던 뼈아픈 경험도 이번 결심에 한몫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최근 원화가 다른 아시아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세였던 것은 큰 폭의 무역수지 흑자가 나는데다 외국인 직접투자가 꾸준히 늘었기 때문" 이라며 "그러나 엔화가 약세이고, 중국 위안화도 평가절하가 점쳐지는 만큼 원화만 버티는데 한계가 있다" 고 지적했다.

실제로 수출 경쟁상대인 아시아 통화의 약세가 계속되면 무역수지 흑자가 감소하면서 달러유입이 줄어 원화환율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자동차.반도체.조선 등 주요 수출품이 모두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다.

게다가 위안화가 평가절하되면 중국과 경쟁하는 경공업 수출품이 큰 타격을 받고, 중국의 저가 경공업 제품과 농산물 수입이 늘면서 무역수지에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따라서 아까운 외환보유고를 애꿎게 허비하지 않고 수출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원화환율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다만 원화환율의 급격한 변동은 막겠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다.

급격한 변동은 혼란을 불러 외국인들이 등을 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규성 (李揆成) 재경부장관은 최근 "엔화 약세의 충격을 일정범위 내에서 통제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밝혀 3백60억달러선의 외환보유고를 갖고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인 바 있다.

정부는 아시아 통화의 혼란이 이어지면 최악의 경우 1백50억달러 정도가 해외로 빠져나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외국인 주식.채권자금 1백34억달러중 30%인 40억달러 ^금융기관 단기외채 90억달러중 60%인 54억달러^민간기업 외채 1백85억달러중 30%인 56억달러 등이다.

이같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는 외환보유고를 기회 닿는대로 늘릴 방침이다.

국제통화기금 (IMF) 과 합의한 올해 말 외환보유고 목표치는 4백10억달러지만 가능하면 5백억달러 이상으로 늘린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 외화차입 여건 악화로 차입금리가 상승하는 것이 큰 부담이다.

예컨대 10년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 가산금리는 지난 9일 4.19%에서 12일 4.67%까지 치솟았다.

원화환율이 상승하면 가장 우려되는 것이 금리와 물가의 상승이다.

정부는 외환시장이 안정돼 있는 만큼 지난해 말처럼 금리가 급등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되레 원화환율과 관계없이 금리를 낮춰가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원화환율이 내려야만 금리를 내릴 수 있다' 는 IMF의 '환율 - 금리 연결고리' 를 보다 확실하게 끊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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