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 납치 미수…정차 순간 문박차고 탈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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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김현철 (金賢哲) 씨 납치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서대문경찰서는 이 사건이 김영삼 (金泳三) 전대통령의 선거운동 대가를 둘러싼 원한관계에 의한 것으로 보고 이날 밤 인천에서 검거한 오순열 (吳順烈.54.인천시남구) 씨를 상대로 범행동기와 현철씨와의 관계 등을 추궁하고 있다.

吳씨는 87, 92년 대선때 집을 팔아 金전대통령측을 도왔으나 푸대접을 받아 불만을 품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 납치 = 범인은 모두 5명. 15일 오전9시40분쯤 서울종로구구기동 자택을 나와 인근 북한산으로 등산을 가던 현철씨가 탄 쏘나타Ⅲ 승용차가 북한산입구 주차장 30여m 전방 지점에서 경사 계급장을 단 경찰복 차림의 40대 남자로부터 검문을 당했다.

이 남자는 운전석에 앉아있던 운전자 延제광 (44.서울동작구사당동) 씨에게 다가가 "당신은 수배중이니 조사에 응해달라" 고 요구, 차에서 내리게 한 뒤 공범 2명과 함께 延씨에게 수갑을 채운 뒤 20여m 떨어진 주차장으로 끌고가 범인들의 쏘나타Ⅲ 승용차에 태웠다.

延씨가 범인들에게 끌려간 직후 평상복 차림의 吳씨 등 2명이 현철씨의 승용차로 들이닥쳐 1명은 운전석에 앉고 吳씨는 뒷좌석에 앉아있던 현철씨를 안으로 밀치고 옆자리에 탄 뒤 차를 구기터널 쪽으로 몰기 시작했다.

◇ 탈출 = 현철씨는 납치당했음을 직감, "당신들 누구야" 고 물으며 반항했다.

현철씨는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고 吳씨는 현철씨의 목을 끌어안고 제지하면서 격투가 벌어졌다.

목을 잡혀 상체를 움직일 수 없게 된 현철씨는 운전중인 남자의 머리를 걷어차며 필사적으로 반항했으며 운전자가 이에 충격을 받은 듯, 승용차는 구기터널을 지나 정차했다.

현철씨는 이 틈을 타 목을 조르고 있던 吳씨 손을 풀어헤친 뒤 문을 열고 빠져나와 도로를 가로질러 탈출했다.

이 과정에서 金씨는 목왼쪽에 직경 2㎝ 정도의 피멍 2개가 생기는 상처를 입었다.

쏘나타Ⅲ 승용차에 실려 구기터널~광화문을 거쳐 일산까지 끌려갔던 운전사 延씨도 범인들이 풀어줘 오전11시20분쯤 현철씨 집으로 돌아왔다.

◇ 범인도주.검거 = 吳씨는 납치가 실패로 끝나자 현철씨의 승용차를 서울은평구불광동 국립보건원앞에 버리고 92년 선거때 알게된 공범 金진구씨와 함께 택시로 영등포 지하철역으로 갔다.

이어 吳씨 등은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간 뒤 오전에 범행을 모의한 모 여관에서 범행 차량편으로 인천에 도착한 동네친구 李기본.林원택.崔모씨 등 나머지 3명과 합류했다.

이들은 오후6시쯤 여관을 나와 흩어졌고 吳씨는 평소 자주 드나들던 인천시남구주안동의 모다방 앞에서 휴대폰 발신지를 추적한 경찰에 의해 오후10시40분쯤 검거됐다.

◇ 수사 = 경찰은 현철씨로부터 "87년 대선때 알게된 吳순열로부터 최근 만나자는 전화와 편지를 받았으나 접촉을 거절했다" 는 진술을 받았다.

吳씨의 부인 유인숙씨는 이날 吳씨가 87년과 92년 대선때 집과 슈퍼마켓을 팔아 YS의 선거운동을 도왔으나 선거후 만나주지도 않아 서운해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吳씨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유서와 함께 '길동무없이 혼자 가지 않겠다' 는 글을 남기고 범인들이 버리고 간 현철씨의 승용차안에서 다이너마이트와 가스총 등이 발견됨에 따라 현철씨를 납치해 해치려 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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