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으로 돌아간 MB … ‘친서민, 중도 통합’ 연일 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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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리 정부가 서민들과 약속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것이었는데 교과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수첩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친서민’과 ‘중도 실용’ 정책을 강조했다. [오종택 기자]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물었다. 이 대통령은 “사교육비를 줄이는 체감할 수 있는 방안들이 안 보인다” “교과부가 좀 더 단호하게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안 장관을 질책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학원 심야교습 금지 법제화 등이 담긴 미래기획위원회의 교육 개혁안이 좌초된 이후 이렇다 할 사교육비 절감 대책을 교과부가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취지의 비판이었다. 안 장관이 답변을 고민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은 5분 가까이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사교육을 없애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이게 제대로 안 되는 것은 교육관련 단체들의 의견이 강하기 때문이라는데 장관도 (영향을 받아) 그러느냐”고 했다. 또 “과거엔 없는 사람들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을 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었지만 사교육 부담이 커지면서 점점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며 “서민계층이 체감할 확실한 로드맵을 갖춘 사교육비 경감 방안 마련에 속도를 내라”고 거듭 안 장관에게 지시했다.

#2.“내 스스로가 서민 출신 아닌가.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고 당선됐고, 또 꾸준히 서민정책을 펼쳐왔지만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 대통령 주재 수요 수석회의를 월요일로 옮긴 뒤 처음 열린 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홍보 부족을 질타하며 친서민정책 행보를 다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좌파나 진보는 앞서가는 사람들이고, 우파나 보수는 변화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개념 규정 자체에도 잘못된 점이 많은데 왜 우리 스스로가 선을 긋느냐”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내가 당선된 것은 이념적으로 중도층과 젊은 층의 지지를 받았기에 가능했다. 우리 스스로가 진보와 보수의 선을 그어 분리시킬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이날 수석회의에선 우리 사회의 이념 간·계층 간·지역 간 갈등을 조정할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의 구성안이 이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검찰총장·국세청장에 대한 파격인사가 발표된 21일을 기점으로 청와대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22, 23일 양일간 열린 청와대 수석회의와 국무회의의 풍경을 보면 이 대통령이 다짐하는 향후 국정운영의 강조점을 읽을 수 있다. 대표적인 방향은 ‘친 서민 정책’과 ‘중도 중심의 사회통합’ 두 가지다. ‘친서민’ ‘중도 실용’ ‘국민통합’ 등은 모두 이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던졌던 낯익은 화두다. 다시 말해 ‘역대 최다 표차인 530만 표 차 대선 승리’를 이 대통령에게 가져다 줬던 가치들로 복귀하는 것,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새로운 국정운영의 해법과 방향을 찾겠다는 얘기다.

특히 ‘친서민 정책’과 관련해 이 대통령은 22일 수석회의에서 “마이크로 크레디트 뱅크(무보증 소액신용대출은행)와 같이 서민에게 실용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23일 국무회의에서도 “비정규직 법안 처리가 되지 않으면 고통 받는 것은 비정규직 근로자다. 그들의 처우가 개선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가 더욱 정교한 전략을 가다듬는 분야는 바로 ‘중도 중심의 국민통합’이다. 여기엔 과거 이 대통령을 지지했던 중도진영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현 정부가 코너에 몰리게 됐다는 판단이 자리 잡고 있다. 중도우파적 성향의 계층이 바라는 ‘선진화를 위한 법치와 사회질서’의 가치는 확고히 지켜나가되, 중도좌파적 계층을 포용하기 위해 친서민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전략이다. 이동관 대변인이 22일 “친서민 행보를 강화하면서도 법치를 흔드는 행동에 대해선 원칙에 입각한 단호한 행동을 하는 이른바 투트랙 전략을 쓸 것”이라고 밝힌 대목이 결국 중도층 우군화 전략의 골간인 셈이다. 두터워진 중도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좌와 우를 끌어안는 국민통합 작업에 매진하겠다는 게 청와대가 그리는 전체 그림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당초 이 대통령이 대선 때 내걸었던 두 가지는 경제 살리기와 국민통합”이라며 “그동안의 경제 올인 행보로 경제회복의 토대가 어느 정도 마련된 만큼 이제 국민통합을 위해 힘을 쏟겠다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글=서승욱·남궁욱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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