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소음과 권리투쟁 7년 60대시민 公社상대로 승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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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 시민이 7년여에 걸친 외로운 투쟁끝에 국내 처음으로 도시지하철 소음피해와 관련해 서울지하철공사로부터 항복을 받아 냈다.

주인공은 박계승 (朴契承.63.서울마포구합정동) 씨. 지난 81년부터 서울합정동에서 살아 온 朴씨는 84년 지하철2호선이 개통된 뒤부터 극심한 소음.진동공해에 시달렸다.

지하철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이어지는 터널부근 단독주택에 사는 朴씨는 지하철 개통 이후 전동차와 철로의 마찰음 때문에 가족끼리의 말소리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같은 소음으로 전화는 집밖 공중전화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독서실과 친척집을 전전하며 공부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소음공해를 참다 못한 朴씨는 91년부터 6년여 동안 동네주민 6백여명의 서명을 받아 관계당국에 끊임없이 진정서를 보내고 주민들과 함께 항의집회를 갖기도 했지만 "방음벽 등을 설치하는 것 이외에는 별 도리가 없으니 기다리라" 는 회신만 받아야 했다.

결국 朴씨는 서울지하철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뜻을 같이하던 주민들이 "계란으로 바위치기" 라며 하나둘 빠져나가는 바람에 96년 7월 단독으로 지하철공사를 상대로 서울지방법원에 손해배상소송을 냈고 '무료변론' 으로 도와 준 정원기 (鄭沅基) 변호사와 함께 소송을 진행했다.

재판 도중 당산철교 철거로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는 바람에 소음.진동측정이 불가능해져 재판 자체가 무산될 뻔하기도 했지만 지하철공사측이 조사한 소음측정치를 자료로 제출해 위기를 넘겼다.

수년간에 걸쳐 지하철공사측이 측정해 법원에 제출한 이 지역 소음도는 환경기준치인 55~65db를 훨씬 초과하는 63~90db.90db이면 청력장애.두통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결국 담당재판부인 서울지법 민사91단독 김윤기 (金潤基) 판사는 지난 4월29일 강제조정 끝에 "지하철공사는 朴씨에게 위자료 5백만원을 지급하라" 는 결정을 내렸다.

朴씨는 "5백만원은 그동안 받은 고통에 비해 턱없이 적은 돈이지만 시민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찾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정승" 이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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