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에세이]사라지는 북경명물 자전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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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베이징 (北京) 근무를 시작한 지 석달. 중국생활엔 아무래도 자전거가 필요하다는 아내의 말에 자전거를 사러 유명한 왕푸징 (王府井) 백화점을 찾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있어야 할 자전거 코너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취재차 중국을 처음 찾았을 땐 분명 엄청나게 쌓인 자전거들을 보았는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복무원에게 물으니 자전거가 안 팔려 올해부터 매장을 폐쇄했다고 대답했다.

5~6년전만 해도 한달에 2천대를 간단히 팔았고 특별판촉 기간에는 하루 3백여대의 자전거가 팔렸지만 자동차보급이 활발해진 94년부터 자전거 판매가 격감하기 시작, 지난해엔 한달에 1백대밖에 못 파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사실 한.중 수교전인 지난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취재하러 온 한국기자들, 특히 사진 기자들이 바쁜 취재시간을 쪼개 자주 찾았던 곳이 있다.

천안문 (天安門) 광장이다.

천안문 또는 그 뒤 자금성 (紫禁城) 을 관광하러 간 게 아니다.

바로 노도처럼 천안문 앞의 장안대로 (長安大路) 를 꽉 메우며 밀려오는 자전거 행렬이 언제나 장관을 선사했던 탓이다.

짓궂은 카메라 앵글은 그 중 특히 스커트 차림으로 아슬아슬 지나는 여성을 따르기 일쑤였다.

8년후인 오늘, 이제 장안대로를 메우는 것은 자전거가 아니라 승용차 물결이다.

광둥 (廣東) 성의 광저우 (廣州) 시에선 자전거 판매량이 격감해 과거 우량 세금납부 기업이었던 우양 (五羊) 자전거 공장이 타기업에 넘어갔다.

이같은 중국의 변화와 대조적인 변화가 한국에서 일고있다.

한국정부가 1천1백10억원을 투자해 전국적으로 자전거 길을 정비하는 등 자전거 보급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를 맞아 한푼이라도 기름값을 절약하자는 노력의 일환인 것 같다.

다시 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당시 아시안게임 응원차 중국에 왔던 일부 지각없는 한국인들중엔 1백달러짜리 수십장을 꺼내 중국인들 앞에서 부채질한 사람들이 있었다.

앞으로 몇년 후 한국 관광길에 나선 중국 왕서방들이 한국에서 1백위안짜리 인민폐 수십장을 꺼내 "어, 한국날씨 왜 이럽게 덥지" 하며 부채질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베이징=유상철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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