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각 빅딜 파급효과]업종 전문화 가속… 일부 후유증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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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삼성.현대.LG 등 3대 그룹이 자동차.석유화학.반도체 등 한국을 대표하는 3대 업종에서 '빅딜 (대기업간 사업교환)' 을 하기로 함에 따라 재계의 판도변화는 물론 국내 산업의 경쟁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 반도체 = 삼성 (세계 1위) 이 LG반도체 (7위) 를 인수하면 일단 메모리반도체의 월간 생산량이 3천4백만개에서 6천만개로 늘어나 시장 지배력이 크게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추락하는 현 시점에선 단기적으로는 생산량 증대에 따른 실익은 없다는 것이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는 시장 특성상 인텔 등 수요 업체들이 한곳에 물량을 한꺼번에 주문하지 않는다" 며 "게다가 서로 상품도 같기 때문에 합쳐져도 수출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특히 2백56메가D램에 대한 양산투자를 미루는 등 투자조정에 나선 마당에 LG반도체를 끌어안게 돼 경영상 상당한 부담이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삼성은 그러나 1위 자리를 더욱 공고히 굳히면서 등락이 심한 반도체 국제가격을 조절하는데 훨씬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게 됐다.

LG 입장에서는 누적적자가 이미 수천억원에 달하는 상태에서 금융비용 부담 등을 덜게 돼 그룹 구조조정에는 도움을 받게 될 전망이다.

◇ 석유화학 = LG쪽은 현대석유화학을 인수함으로써 일거에 업계 1위의 화학업체 자리를 굳힐 수 있게 됐다.

지난 5월 연산 50만t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 (NCC) 증설로 석유화학 기초원료인 에틸렌 생산을 업계 1위 규모인 연간 1백만t으로 늘린 현대의 생산시설을 고스란히 넘겨받게 됐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은 특히 '규모의 경제' 에 기초한 대표적인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덩치를 키우는 것이 경쟁력 확보에 큰 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또 업계 선두를 다투고 있는 합성고무 시설까지 넘겨받게 되는 부수효과도 얻을 수 있는 등 종합화학업체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하지만 부작용도 예상된다. 먼저 공장이 여천과 서산으로 떨어져 있어 원가절감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데다 최근 석유화학 제품의 가격 속락으로 채산성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LG는 현대석유화학의 인수로 화학업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호기를 맞았지만 단기적으론 경영여건 변화에 따라 위험부담도 감수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현대는 에틸렌 증설에 발맞춰 회사 로고를 바꾸는 등 석유화학업종을 그룹의 새 주력사업으로 키우던 상황에서 이를 LG에 내주게 돼 아쉬움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유화업계 전체가 과잉투자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현대그룹 전체로 볼때 긍정적 측면도 있다

◇ 자동차 = 현대.삼성간 합병은 기아자동차의 부도유예협정 이후 1년가량 끌어왔던 자동차업계의 구조조정을 매듭짓는 결정적 계기가 될 전망이다.

대우가 이미 쌍용을 인수한 상태에서 현대가 삼성을 인수하면 국내 자동차업계는 현대.대우.기아의 3각체제로 복귀하게 되고 남은 현안인 기아의 향방을 정하는 데에도 가속도가 붙게 될 전망이다.

현대는 줄곧 국내 1위를 달려오다 올들어 대우의 무서운 추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삼성 인수를 통해 다시 1위를 굳힐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됐다.

그러나 이미 연 1백65만대의 생산시설을 갖추고도 시장상황이 좋지 않아 대규모 정리해고까지 하려는 마당에 삼성자동차까지 안게 되면 당장의 기업 운영에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선 현대의 삼성 인수 결정엔 기아의 인수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자동차 인수가 현대에는 시너지효과 외에 국내 생산량을 조절해 과잉투자 부담을 덜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 업체와의 무한경쟁 시대에서 정부의 인위적인 통합으로 인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강화 노력이 뒷걸음질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편 삼성 입장에서는 엄청난 돈을 들여 시작한 신규 유망산업을 중도포기해야 하게 됐지만 반대 급부로 그룹 재무구조 개선 및 업종 전문화에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고윤희·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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