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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다시 보는 ‘The Coldest Winter’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2년 전 출간된 뒤 한국의 외교·안보 부처 관료, 기자들이 서로 권해가며 읽는 책이 있다. 뉴욕 타임스 기자 출신의 역사학자로, 퓰리처상을 받은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역작 『The Coldest Winter』다. 1950년 9월 15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뒤 파죽지세를 이어가던 미군과 한국군이 한반도 북부 혹한의 산악지대에서 중공군의 매복 작전에 처절하게 패배한 그 겨울을 일컫는 제목이다. 혹독한 겨울은 세계사에서 가장 참혹한 3년간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한 외교관은 “비장한 마음으로 현실을 보게 된다”고 했다.

왜일까. 역사의 반복성에 대한 본능적 불안, 당시를 복기하면서 느끼는 수치심, 북핵으로 요동치는 현실을 보면서 드는 기시감 때문이다. 한국전쟁엔 김일성의 오판, 주변 강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계산과 판단 착오, 오만한 영웅 맥아더의 실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3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해 1월 미국은 아시아 방어선에서 남한을 제외한다고 했다. 소련의 스탈린은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했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내전으로 쇠약해진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자 참전을 결정했다.

핼버스탬에 따르면 트루먼 대통령에게 경례조차 하지 않았던 맥아더는 중공군의 개입 정보를 무시했다. 11월 40만 명의 중공군이 압록강 넘어 진을 쳤어도, 궤멸된 아군의 상대가 중공군이란 증거가 나왔어도 깔아뭉갰다. 대책 없이 북진만 외쳤다. 한반도의 운명은 더 이상 남북한 지도자의 손에도, 민중의 손에도 있지 않았다.

혹독한 겨울로부터 59년이 지났다. 한국은 경제규모 11위의 민주국가로 성장했다. 중국·러시아는 80·90년대를 거치며 자기변신을 했다. 북한만 3대 세습의 퇴행 속에 갇혀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남은 수명은 길지 않아 보인다. 불바다니, 잿더미니 대남 협박은 여전하다. 그들의 국제상규를 벗어난 도발적 행동과 핵개발은 한반도를 4강국의 각축 프레임에 가두고, 한민족의 기력을 뺏는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

16일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만났다. 북한의 권력 승계를 둘러싼 불안정성과 불가측성,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열린 회담이었다. 두 정상은 ‘핵우산과 재래식 전력까지 포함한 확장 억지력’을 방위공약에 담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한 평화통일을 지향한다는 점을 미래동맹 비전에 명문화했다.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50분간 속 깊은 얘기를 나눴다.

59년 전 김일성은 국제 정세를 몰랐다. 남한 인민들이 무장봉기로 환영해 3주 안에 민족통일을 할 거라며 38선을 넘었다. 2009년 대한민국의 역량은 한반도 운명의 주인으로 손색이 없다. ‘그날’을 대비하는 치밀한 전략, 의지, 국론의 통합이 문제다. ‘혹독한 겨울’은 그걸 대비하는 한,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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