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권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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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호 34면

왕의 시선은 창공을 빛내며 낮을 창조해내는 햇빛과 하나가 되어 오랫동안 떨어질 줄 몰랐다. “폐하께서는 진실로 빛의 아들이요 태양의 아들인 람세스이십니다. 폐하의 통치가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를 선포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빛의 아들’ 람세스 2세는 BC 13세기경 고대 이집트 왕국의 가장 위대한 파라오로 불린다. 67년간의 통치 기간 중 이집트 문명의 절반을 이룩하면서 파라오의 영광을 재현했다. 람세스는 왕위계승과 동시에 통치 수단으로 거대한 대신전들을 건축했다. 여기에 결합된 빛들은 신과 같은 존재인 파라오의 분신이었다. 그리고 빛과 어둠이 담긴 신전 안에서 빛을 이용한 다양한 제사의식을 집행한다. 이 시기에 빛은 신과 소통하는 매우 신성한 소재이자 일반 군중을 통치하는 도구였다. 장엄하게 쏟아지는 빛의 모습은 통치자에 대한 두려움과 경이를 낳았다. 파라오는 빛과 어둠의 신비로운 모습을 삶 속에서 다양하게 표현해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권력자로 군림했다.

번갯불에 대한 공포, 경외심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무지개, 미래를 점쳐보는 하늘의 별자리…. 빛은 인간의 주변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면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의 빛에 대한 공포와 경외심은 고대의 미신과 종교·제사, 나아가 예술적 표현에까지 나타나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관계 구축 및 다양한 통치수단으로 적용돼 왔다. 1572년 하늘에 금성만큼이나 밝은 샛별이 출몰하자 성서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여 교회는 당혹스러워했고 교회의 요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화형당했다. 중세 시대에 빛의 사용은 극히 제한돼 야간에 빛을 쓰려면 관가의 허락을 미리 받아야만 했다. 그 결과 백성들은 빛 없는 암흑 속에서 사회적 부조리와 불신을 양산할 수밖에 없었다. 오직 교회 안에서만 빛은 소통과 구원의 역할을 했다.

18세기 대도시에 가로등이 등장하면서 지배층 중심으로 사용되던 빛은 대중과의 교류를 시작하며 소통 수단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지배층은 빛을 또 다른 성군정치의 재료로 사용했다. 19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빛을 내는 광원의 내용이 다양하게 진화됐다. 결국 에디슨의 백열등 발명을 계기로 인류의 삶은 전환점을 맞이했다.

대중화된 빛의 사용은 더 이상 특권층의 통치수단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르게 대중의 삶을 지배하고 만들어가는 역할로 진화하게 된다. 빛을 관리하고 조절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했다. GE, 오슬람, 필립스 등 광원(光源)의 대표 브랜드들이 빛을 이용한 모체 기업으로서 다른 분야와 연계한 세계적 글로벌 기업으로 태어났다. 오늘날까지 광원을 모태로 한 이들 기업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자신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배의 형태와 방법이 바뀐 것이다. 오래된 도시이거나 새롭게 계획된 많은 도시가 각기 다양한 빛의 언어로 그들만의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빛이 새로운 정치의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뉴욕의 세련된 야경, 홍콩의 빛의 심포니, 두바이의 꺼지지 않는 황금 불빛, 리옹의 빛의 축제…. 모두가 빛이 정치를 만나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고 상징적인 힘을 부여함으로써 시민들에게 프라이드를 제공해주고 그것을 능력 있는 정치가의 광고로 사용하는 사례들이다. 어디 그뿐이랴. 아돌프 히틀러가 빛의 특성을 이용해 군중과 소통한 일례는 유명한 일화다. 새로운 표현수단으로 진화되는 일상의 공간 가득한 촛불을 바라보며 생각해본다. 흔들리는 촛불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읽는 방법과 그것을 아름다운 소통의 도구로 사용해 그 빛이 우리에게 또 다른 프라이드를 줄 수 있는 승리의 사례가 됐으면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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