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대의 보여주고 진보는 반감 극복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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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사회에서 갈등은 일상화됐다. 이슈가 생기면 전선이 명확하게 갈린다. 보수·진보 모두 상대의 말에 귀를 닫고 있다. 반면 통합을 부르짖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각종 이슈를 놓고 토론회를 진행 중인 재단법인 굿소사이어티(이사장 정진홍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19일 ‘사회통합을 위한 공통가치’를 주제로 모임을 가졌다. 사회학·법학·정치학·경제학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고려대 박길성(사회학) 교수의 ‘사회통합을 위한 가치’를 주제로 한 발제와 숭실대 강경근(법학), 명지대 김형준(정치학), 성균관대 안종범(경제학) 교수의 토론이 이어졌다.

박 교수는 현 시국을 “지역·젠더(성)·교육·소수자·이념 등 갈등의 전람회장”이라고 표현했다. 갈등 증폭의 배경으로 그는 ‘노무현 정부의 주류 교체를 향한 권력이동과 이명박 정부의 보수 회귀’를 꼽았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탈권위·주류 교체·386세대 등의 새로운 상징이 등장했다”며 “이에 따라 갈등이 정치·경제·교육·문화 등 전 분야로 퍼져나갔다”고 진단했다. “노무현 정부는 그러나 참여의 제도화에 실패했다”며 “토론을 즐겼는지 몰라도 소통은 매우 취약했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노무현 정부와 정확히 반대의 궤적을 보인다”며 “공공가치를 향한 사회적 대협약을 갖추지 못하면 5년 내내 갈등이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새로운 권위의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권위는 질서의 다른 표현이자 사회통합의 토대”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보수와 진보 모두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것을 주문했다. 그는 “보수란 여유·능력·양보로, 진보는 결기·기개·도덕·당당함으로 살아야 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보수는 대의(大義)를, 진보는 반감 극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강자의 양보는 통합의 보편적 기준”이라며 “어떻게 화해하고 통합하겠다는 것인지 정부가 먼저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들도 다양한 의견을 보탰다. 강경근 교수는 “갈등 해소의 최소 기준으로 헌법이라는 권위가 존재한다”며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입헌적 정통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형준 교수는 이념 갈등이 과대 포장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규명을 강조했다. 그는 “보수든 진보든 이념갈등을 활용해 왔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증폭되는지, 이런 추세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보의 내용보다 드러나는 이미지에 주목하는 점을 정치인들이 활용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관료·정치인·학자·언론 등 주도 세력의 자기반성과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안종범 교수)는 주장도 나왔다.

일반 회원들도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김인섭(법무법인 태평양 명예대표) 변호사는 “권위는 법치에서 시작된다”며 “법에 기반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말했다. 이밖에 “소통은 상대방에 대한 인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방적인 주장은 어느 쪽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등의 발언이 방청하던 회원들에게서 나왔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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