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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사치 갤러리 오늘부터 ‘코리안 갤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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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형구, ‘호모 아니마투스(Homo Animatus)’, 100×150×110㎝, 2007. “고고학에 가깝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철저한 고증과 연구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한국 작가 31명이 현대 미술의 ‘메카’에서 주인공이 된다. 장소는 영국 런던 중심부의 카운티홀에 위치한 사치(Saatchi) 갤러리. 데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 영국 젊은 미술가들(yBa·young British artists)을 길러냈고 현대 미술의 물줄기를 미국 뉴욕에서 런던으로 돌려놓은 곳이다.

사치 갤러리는 이달 20일부터 내달 5일까지 한국의 신진 작가들을 초대해 ‘코리안 아이(Korean Eye)’전을 연다. 사치에서 한국 작가들만의 전시가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 이곳에서 한국 현대 미술을 대표할 작가들은 ‘현실과 가상’ ‘실제와 복제’를 두고 고민한 결과물을 내놨다.

◆뼈의 작가=이형구(40)씨는 뼛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최초로 단독 전시를 열며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톰과 제리’의 뼈다귀만 남겨 화제가 된 작가다.

생쥐 제리를 낚아채는 순간 뼈를 드러낸 고양이 톰은 자신이 실존하는 생물임을 주장한다.

이같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희미하게 하는 아이디어는 2004년 출발했다. 당시 이씨는 ‘런 런 런 (Run Run Run)’이라는 제목을 단 작업에서 생물의 ‘진짜 실체’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뼈에 주목했다. 종이로 만든 인간의 뼈는 머리가 크고 다리는 짧고 손가락은 세 개 뿐이었다. 정상적인 인간 신체의 비율을 망가뜨린 대신 역동성과 유머를 얻었다. 애니메이션 주인공으로 아이디어가 확장되기 직전 단계의 작품이다.

이번에 사치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호모 아니마투스’는 당시 종이로 만들었던 작품을 레진(인공 치아에 이용되는 천연수지)으로 다시 작업한 것이다.

벅스 버니(Bugs Bunny)의 뼈를 제작하기 위해 실제 토끼를 직접 잡아 해부한, 무시무시한 정확성의 작가 이형구의 출발 지점을 돌아보는 작품인 셈이다.

◆가짜의 작가=이용백(43)씨는 관객을 속인다. 물에서 건진 물고기를 늘어놓은 것 같아 들여다보면 전부 가짜다. 플라스틱으로 된 몸통은 매끄럽게 두 동강이 나 있고 쇠로 된 낚시찌가 붙어있다. 실제 물고기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예쁘다. 진짜 물고기를 잡는 가짜 물고기다. 이씨는 그동안 사람의 진짜 눈동자보다 더 아름다운 인공 안구, 자연 풍경보다 더 자연스러운 군인의 위장복 등을 소재로 작업을 해왔다.

대표작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피에타(Pieta)’. 작품이 완성되고 나면 보통은 버려지는 거푸집을 버젓이 작품으로 내놨다. 예수를 안고 있는 것은 성모 마리아가 아닌 거푸집이다. 자신의 복제품을 안고 있는 원형 역시 진짜와 가짜에 대한 고민을 품고 있다.

(왼쪽)황인기, ‘플라 마운틴 (Pla Mountain) 09-188’, 192×192㎝, 2009색색의 레고 블록을 붙여 산수화를 재현했다. (오른쪽)이용백, ‘플라스틱 피시(Plastic Fish)’, 182×228㎝, 2008. 비디오 아트와설치 작업을 주로 해오던 작가가 유화를 그렸다.

◆입체의 작가=황인기(58)씨는 탈출했다. 평면에서 튀어나와 올록볼록한 산수화 ‘플라 마운틴(Pla Mountain) 09-188’을 내놨다. 작은 레고 블록을 모자이크처럼 붙여 만든 작품이다. 블록마다 다른 높낮이에서 그림자가 생기고 거친 돌산의 느낌이 살아난다.

황씨는 그동안 공사판의 금속 못, 실리콘 등 현실 세계에 널린 재료로 작업을 해왔다. 아이들 물건인 레고, 패션 피플의 물건인 크리스털 등으로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인왕제색도’를 재해석했다. 사실의 재현보다는 정신 세계를 그렸던 산수화에 가장 현실적인 물건들을 붙인 것이다.

이밖에도 이번 전시에는 김준·권기수·데비한 등 한국 현대 미술의 기둥 구실을 하는 작가들이 참여한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이대형씨는 “‘코리안 아이’전은 한국 현대 미술이 변방에서 중심부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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