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의 음악세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조용필이 걸어온 음악노선은 참으로 다양하다. 록에서 발라드, 트로트와 민요, 그리고 동요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곡에서 그는 거듭 변신해왔다. 그럼에도 거기에는 '조용필적' 인 통일성이 있다.

조용필 음악의 키워드는 바로 '록' 과 '한국적' 이란 단어다. 60년대 영.미 록이 그의 음악 출발점이긴 했어도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우리 풍토에 맞는 음악으로 재창조해낸 것이다. 70년대까지 그의 이러한 작업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불렀던 트로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 (75년)가 큰 성공을 거뒀다.

물론 '돌아와요…' 는 원곡을 고고 리듬으로 편곡해 '세미 트로트' 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 게 사실이지만 그의 본래 색깔은 아니었다. 조용필 음악세계의 본격 시작은 80년 발표한 공식 첫 앨범 '창밖의 여자' .당시엔 이름조차 생소했던 신시사이저라는 악기를 처음 도입했던 '단발머리' 는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조용필 이전과 이후' 로 구분하는 획이었다.

다시 이어지는 '고추잠자리' '못 찾겠다 꾀꼬리'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미지의 세계로' …. 부드러우면서도 친근한 멜로디의 록음악은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는 작품들이었다.

70년대 이후 수면 위로 간간이 떠오르던 록음악을 한국 가요시장의 전면으로 부상시킨 공헌을 한 셈이다.

여기다가 '기도하는…' 이라는 말만 나오면 자동적으로 '오빠~' 의 절규가 당연히 따라나오게 했던 '비련' 을 비롯, '촛불' '친구여' 등의 발라드나 '일편단심 민들레야' '허공' 'Q' 등 트로트 곡들은 장년층을 포함한 보다 많은 대중을 자신의 편으로 흡인하는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그가 미친 영향은 수없이 많다. '오빠부대' 라는 말을 창조하게 한 주인공이며 한국 최초로 음반을 1백만장 넘게 판매했고 일본 무대에서도 슈퍼스타의 명성을 날린 점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10대에서부터 장년층까지 모두 공략하려는 전략 때문에 록과 트로트가 어색하게 결합하는 모양새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90년대 댄스음악에 밀려 아성은 무너졌다.

문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