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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실리콘밸리와 김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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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워싱턴을 방문했던 한국 대통령은 많지만 실리콘밸리를 찾는 한국 대통령은 오늘 방미 (訪美) 길에 오르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처음이다.

노태우 (盧泰愚) 전 대통령이 실리콘밸리의 관문 (關門) 인 샌프란시스코까지 간 적은 있었다.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이른바 '북방 (北方) 외교' 를 뚫을 때였다.

당시 盧대통령도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미니 정상회담' 뒤에 실리콘밸리의 핵심 중 하나인 스탠퍼드대학에 들르긴 했다.

그러나 강연을 하기 위해서였지 金대통령처럼 실리콘밸리를 보고듣기 위함이 아니었다.

지금 외환위기의 책임 때문에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강경식 (姜慶植) 의원이 당시 "북방은 우리 경제의 퇴로 (退路) 지 진로 (進路)가 아니다" 며 앞날을 걱정했던 일도 그래서 다시금 기억에 새롭다.

우리 경제는 여러 면에서 盧대통령 시절부터 긴 퇴로에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외환위기 속에서 金대통령은 워싱턴에 이어 실리콘밸리를 방문한다.

벤처의 요람인 그 곳에서 金대통령은 세계적인 기업의 최고경영자들과 만날 계획이다.

이미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 등 세계 각국의 수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다녀간 실리콘밸리에 金대통령은 한국의 대통령 중 처음으로 자신의 '휴먼 네트워크' 를 구축할 좋은 기회를 만든 셈이다.

반면 워싱턴은 金대통령에게 실리콘밸리처럼 낯선 곳이 아니다.

워싱턴은 그가 이미 오래 전부터 개인적 휴먼 네트워크를 두텁게 쌓아 온, 편안하고 익숙한 도시다.

80년대 초 미국 '유배' 시절, 워싱턴 남쪽 알렉산드리아의 비좁은 고층 아파트에서 식사 후 金대통령이 이희호 (李姬鎬) 여사를 도와 함께 설거지를 하던 어느 '저녁 초대' 를 지금도 기억하는 워싱턴 인사들은 꽤 있다.

설거지를 도와주려 해도 부엌에 金대통령 부부 말고는 한사람도 더 들어설 자리가 없던 아파트였다고 한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레이건 대통령으로 바뀔 때 정권인수팀의 한명으로 '김대중 구명 (救命)' 건을 넘겨 받았던 리처드 앨런 전 백악관안보보좌관을 비롯,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나 스티븐 솔라즈 전하원의원 등 金대통령을 지지했던 인사들도 다 그의 인적 자원이다.

이런 워싱턴에서 金대통령은 여러 지인 (知人) 들을 만나고, 민주화를 위한 노력에 박수를 받으며, 경제개혁의지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다시 한번 전할 수 있다.

대북 (對北) 정책도 이미 뉴욕타임스지와의 회견을 통해 좋게 실마리를 잡았다.

실리콘밸리는 워싱턴과 달라도 아주 다르다.

워싱턴을 움직이는 배꼽 아래의 힘이 결국 '권력욕' 이라면 실리콘밸리는 철저하게 '돈 독' 이 움직인다.

기술.자본.경영의 노하우를 밑천으로 백만장자.억만장자가 되겠다는 꿈을 자유롭게 이룰 수 있는 토양 (土壤)에서 실리콘밸리는 자생 (自生) 했다.

워싱턴의 정치가 해 준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워싱턴은 도리어 빌 게이츠를 불러다 윈도98의 끼워팔기로 경쟁제한적 행위를 했다고 야단치는 곳이다.

워싱턴의 자유민주주의와 실리콘밸리의 시장경제는 화합하기보다 부딪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했듯 자유민주주의의 평등.다수결 논리와 시장경제의 차등.창의적 소수 논리는 갈등하게 마련이다.

대신 소프트웨어를 재산권으로 철저하게 인정하는 풍토, 스탠퍼드대학과 같은 테크놀로지 공급처, 스톡옵션에 의한 확실한 보상 시스템, 투명한 기업회계를 바탕으로 한 나스닥과 같은 증권시장, 획일적 가치관을 길러주지 않는 다원주의 교육 등의 토양이 실리콘밸리를 길러냈다.

이런 실리콘밸리에선 옷차림부터가 정장보다는 청바지에 티셔츠가 더 어울린다.

워싱턴에서의 민주화에 대한 박수를 뒤로 하고 실리콘밸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金대통령은 '정장과 청바지' '국빈만찬과 피자' 에 맞먹는 변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실리콘밸리가 바로 보이고 YS 정권 말기부터 수없이 실리콘밸리를 찾았던 다른 국내 정치인들과 차별화된다.

김수길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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