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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부실기업 경영자 사법처리…책임은 어디까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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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원석 (崔元碩) 전 동아그룹 회장이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보유주식과 개인부동산을 모두 내놓은데 이어 박건배 (朴健培) 해태그룹 회장에 대해서도 채권은행단은 사재 (私財) 를 헌납시킨다는 방침이다.

잘못된 경영으로 기업을 부실하게 만든 장본인으로서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김선홍 (金善弘) 전 기아그룹 회장과 장수홍 (張壽弘) 청구 회장이 회사 자금을 불법 유용한 혐의로 각각 구속되는등 불법행위로 기업을 부실케한 경영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도 잇따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 법학연구소는 최근 부실기업경영자의 책임 문제와 관련된 세미나를 개최하는등 법조계에서도 논의가 확산되는 추세다.

과연 기업 부실에 대한 경영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이며, 또 어떻게 물어야 할지 알아본다.

부실기업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확고하다.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위해 64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자금을 투입키로 한 마당에 주요 원인제공자격인 부실기업이나 부실금융기관의 경영자들도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방만한 경영으로 은행과 기업을 부실하게 만들어 국민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운만큼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하며 '기업은 죽어도 기업가는 산다' 는 말이 더이상 통용돼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방향은 두 갈래다. 부실경영 책임이 명백한 경우 회사에 손실을 입힌만큼 경영자의 개인재산을 내놓도록 구상권을 행사하는등 민사상 책임을 묻고, 불법행위가 있다면 형사처벌까지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업 부실의 책임한계를 따지기가 쉽지 않은데다 오너 경영자들에 대한 구상권행사등 민사상 책임추궁이 잇따를 경우 자칫 기업마인드를 위축시키는등 부작용도 예상돼 신중한 접근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어디까지가 부실경영의 책임인가 = 가장 논란이 될수 있는 부분이다.

경영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책임져야 하겠지만, 경영활동과 기업 부실의 인과관계 입증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숭실대 이성섭 (李性燮) 교수는 이와관련 "기업주가 부실을 저질러놓고 국민이 뒤집어 쓰는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아야 한다" 고 주장했다.

건전한 기업풍토 조성을 위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의 김용렬 (金龍烈) 연구위원은 그러나 "근본적으로 무엇을 부실로 보느냐가 문제" 라고 지적한다. 법정관리.화의 기업이라고 모두 부실기업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경영자의 '판단' 이 잘못돼 결과적으로 기업이 부실해졌을 경우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도 문제다.

구상권 행사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한경연의 이재우 (李栽雨) 연구위원은 "주식회사는 유한책임이 원칙이며 회사와 개인은 별개" 라고 지적하고 "기업부실에 대해 경영자가 사재까지 털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나쁜 선례가 될수 있으며 혼란만 가중시킬 것" 이라고 우려했다.

책임 주체에 대한 논란은 가닥이 정리됐다. 그룹회장등의 직함만 갖고 기업을 지배해왔으면서도 구체적인 경영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소재가 불분명했던 오너 대주주의 경우 이사등재여부와 상관없이 실질적으로 권한을 행사했다면 '사실상의 이사' 로 책임을 지는게 당연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와달리 경영자가 회사공금을 빼돌리는등 법을 위반한 경우가 있다면 경영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추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책임 어떻게 묻나 = 경영자의 책임범위를 가려내기가 쉽지않은 만큼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부실기업주들이 우리 경제를 멍들게 한 점은 인정되지만 구체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문제에서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민감정만 앞세워 초법적인 대응을 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의 김주형 (金柱亨) 상무는 "경영진의 고의적인 행동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면 주주들이 당연히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할것" 이라고 말했다.

고동원 (高東源) 변호사는 그러나 최근의 사재헌납과 관련 "사유재산 몰수부분은 신중해야 한다" 고 말했다. 기업주가 책임이 있는 부분만 가려내 민사상 책임을 따져보고, 만약 고의성과 사기성이 드러나면 형사상 문제까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형사책임의 경우 엄정한 법적용을 강조,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의 이승희 (李承熙) 간사는 "검찰의 수사의지만 있다면 새로운 입법 없이도 가능할것" 이라고 지적했다.

◇ 문제점.부작용은 없나 =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포괄적으로 물을 경우 무엇보다 문제되는 것은 기업마인드의 위축. 이한구 (李漢久) 대우경제연구소장은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칫 기업인들이 움츠러드는 계기도 될수 있다" 며 "기업경영은 미래예측이 불가능한데 누가 투자하고 공격적인 경영을 하겠느냐" 고 말했다. 기업인들이 훗날 혹 책임추궁을 당할까 걱정해 소극적인 경영을 할 경우 경제회생에도 도움이 안된다는 지적이다.

한경연 이재우 (李栽雨) 연구위원은 "국내 진출한 외국기업이 부실경영을 했을 경우 과연 처벌할수 있겠느냐" 며 "자칫 외국기업들의 국내진출 의지를 꺾어서는 곤란하다" 고 말했다.

고윤희.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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