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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하려다 … 폭행 막다 … 살신성인 ‘작은 영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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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던 2월의 마지막 날 오후 4시 경남 통영시 욕지도 앞바다. 양석원(27·사진)씨는 어선에서 동료들과 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때 어구 투망작업을 하던 동료 선원 정모씨가 그물에 발이 걸려 바다에 빠졌다. 양씨는 이것저것 생각할 새 없이 정씨를 구하기 위해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놀이공원의 수상 안전요원과 스포츠센터 스킨스쿠버 강사로 활동한 경험이 있어 물이라면 자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양씨도 정씨를 구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정씨를 구하려 애쓰다 거센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정씨와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날 밤 11시, 양씨와 정씨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양씨가 선원으로 일한 지 9일 만에 빚어진 비극이었다.

제주 출신인 양씨는 해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 후 자원봉사 활동을 열심히 했다. 수상안전구조원 자격증뿐 아니라 방재안전관리사 자격증, 응급구조사 2급 자격증 등 각종 재난·재해 관련 자격증을 따 재난 구조활동에 참여해 왔다. 2005년엔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 소속 1365 중앙구조단의 핵심 단원이자 해상팀 팀장을 맡아 전국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2006년 강원도 수해복구 현장과 2008년 충남 태안 기름 유출사고 현장 등 봉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는 항상 양씨가 있었다. 양씨는 불우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2006년 전북 정읍에서 폭설 피해 구조활동을 수행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금 30만원을 받았는데 이 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놓았다.

양씨가 바다에서 동료를 구하려다 숨지자 고향인 애월읍 수산리를 비롯한 제주 지역 주민 1000여 명이 양씨를 의사자(義死者)로 추천하는 서명운동을 벌였고, 양씨는 18일 의사자로 선정됐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이날 ‘2009년 제3차 의사상자심사위원회’를 열어 살인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 죽거나 다친 7명을 의사상자로 선정했다. 2007년 평소 알고 지내던 노래방 여주인을 칼로 위협하는 손님을 제지하다 칼에 찔려 사망한 김병록(당시 48세)씨도 의사자로 선정됐다. 의사자 유족에게는 1억9700만원이 지급된다.

이 밖에 ▶의사자 양씨와 함께 바다에 뛰어들었다 어깨를 다친 이영섭(30)씨 ▶길거리에서 폭행당하는 여자를 구하려다 부상한 정순희(45·여)씨 ▶ 주점 여주인을 칼로 찌르는 손님을 제지하다 다친 원정남(54)씨 ▶절도 용의자 검거 과정에서 다친 황석명(55)씨 ▶거주하던 건물의 불을 끄다 2도 화상을 입은 이문범(49)씨가 의상자로 선정됐다. 이들은 부상 정도에 따라 1000만~1억970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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