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fashion] 루이뷔통 아르노 회장이 공개한 ‘괜찮은’ 현대미술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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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조지, 계급 투쟁, 전투 중, 통로(Class War, Militant, Gateway), 363X1010㎝, 1986 영국 출신 조지 패스모어와 이탈리아 출신 길버트 프로슈의 3부작이다. 아르노 회장이 애장품으로 손꼽는 작품. 두 남성 듀오 작가의 작품은 검정 테두리의 사각 격자가 작품의 바탕이 되는 게 특징이다. 다양한 표정과 포즈의 여러 인종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응시하는 두 작가의 눈동자가 이채롭다.

루이뷔통은 왜 무라카미 다카시를 택했을까. 수많은 현대미술 작가 중 유독 그가 루이뷔통 가방의 현대적 재해석 작업을 도맡은 배경은 무엇일까.

일본의 현대미술 작가 무라카미는 2003년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과 협력한 ‘무라카미 백’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고전적인 루이뷔통의 갈색 가방을 흰 바탕에 알록달록한 무늬로 변신시킨 무라카미의 성공 뒤에는 세계 최대의 명품 기업인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LVMH) 그룹을 이끄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있었다. 무라카미는 한 인터뷰에서 “아르노 회장이 날 알아보기 전에 난 그저 이름 없는 현대미술 작가였을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금처럼 현대 미술계의 스타로 발돋움한 결정적인 계기가 아르노 회장과 루이뷔통이라는 명품 브랜드의 후원 덕분이었음을 작가 스스로 인정한 발언이다.

장미셸 바스키아, 그릴로(Grillo), 243.8X537.2X45.7㎝, 1984 88년. 28세로 요절한 천재 작가 장미셸 바스키아는 대중성과 세련미를 절묘하게 조합해 미술계의 전설로 남았다. 이 작품처럼 4개의 재활용 나무 판자를 이어 붙여 표현한 바스키아의 작품은 흔치 않다. 아르노 회장과 수잔 파제는 이 작품이 “바스키아에게 영감을 준 다양한 문화를 흡수, 초월해 역동적이고 젊음이 넘치며 신랄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고 평했다.

제프 쿤스, 원숭이 열차(새)(Monkey Train(Birds)),274.3X213.4X6㎝, 2007 제프 쿤스는 1980년대 초 앤디 워홀이 구현한 팝아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으며 명성을 쌓은 작가다. 이 작품은 갈색과 회색으로 된 원숭이 장난감 머리와 그 뒤로 비치는 ‘가지 위에 앉은 새’의 이미지가 ‘과거와 현재의 혼합’을 보여 준다.

아르노 회장은 아트뉴스가 선정한 ‘2008 아트 컬렉터 톱 200’에 들 만큼 세계 미술계에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미술품 감식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가 처음으로 마련됐다. 지난달 22일 홍콩 예술박물관에서 문을 연 ‘루이뷔통: 창조에 대한 열정’전에서다. 전시 중 ‘더 컬렉션, 어 초이스’란 주제의 섹션은 아르노 회장의 개인 소장품과 루이뷔통 창조재단에 전시될 작품 중 엄선한 것들로 꾸며졌다. LVMH 그룹은 2012년 완공 예정으로 프랑스 파리에 루이뷔통 창조재단을 짓고 있다. 선정된 작품은 길버트&조지, 장미셸 바스키아, 제프 쿤스, 리처드 프린스 등 재기 넘치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것. 이들 작품이 일반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품 선정은 미술관 개관 전까지 아트 디렉터 역할을 맡은 수잔 파제가 도왔다. 파제는 2006년까지 파리 현대미술관장을 지냈다. 아르노 회장은 전시 개막을 몇 시간 앞두고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파제를 직접 소개했다.

“혼자 미술품을 보러 다닐 때보다 파제와 같이 의견을 나누며 작품을 고른 뒤부터 실수가 크게 줄었어요.”

즐겁게 웃으며 대답하는 그의 얼굴엔 전문가와 함께 고른 최고의 현대미술 컬렉션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곁에 있던 파제가 아르노 회장의 남다른 감식안에 대해 설명했다.

“예술을 ‘타인과 대화’하는 매개체로 인식하죠. 각기 다른 시공간 속에서 여러 가지 다른 문화를 경험하며 살고 있는 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작품을 선호합니다.”

현대인의 개성ㆍ고독ㆍ고단함을 표현하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언어와 해석이 있어야만 ‘아르노 컬렉션’에 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의 현대미술 작가가 프랑스 전통의 명품 가방을 재해석한 배경처럼. 아르노 회장이 말을 이었다.

“예술이란 어느 한 순간의 ‘맥락’을 반영해요. 혼자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란 말이죠.”

그의 설명에 따르면 ‘괜찮은 현대미술품’이란 동시대인의 감성을 반영해야 한다. 인기 있는 TV 드라마나 영화가 그렇고, 대중에게 사랑받은 루이뷔통 가방이 그런 것처럼.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작품에 녹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다음에 어떤 작가의 작품에 눈독을 들일지, 그 작품이 어떤 형태의 ‘예술적 대화’를 통해 또 하나의 매력적인 가방으로 태어나게 될지, 루이뷔통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홍콩=강승민 기자
사진=루이뷔통 제공

루이뷔통 창조재단

루이뷔통이 2012년 완공을 목표로 프랑스 파리 서쪽 외곽지대의 ‘불로뉴 숲’에 짓고 있는 건물. 프랭크 게리가 설계했다. 대지 면적 3200㎡, 연면적 8900㎡의 재단 건물은 현대미술 소장품의 상설 전시 공간과 기획 전시 공간 등으로 구성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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