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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제3장 함부로 쏜 화살 봉평 휘닉스파크 주변 식당들과 약속조차 지키기 어렵다는 판단에 이른 한씨네 행중은 결국 인제로 떠나기로 작정하였다. 영월에서 인제까지는 수월한 노정이 아니었다.

평창과 대화를 지나 영동고속도로와 만나는 속사를 거쳐 운두령을 넘어야 했다. 창촌에서 계속 북으로 달려 명개리와 갈촌리.영덕리를 지나 송천리에서 드디어 내륙인 한계령길로 접어들어야 했다.

한계령 휴게소 턱밑에서 국도와 갈라져 남쪽으로 나 있는 소로는 보통 등산로쯤으로 알기 쉽다. 그러나 그 소로를 따라 시오리 정도 산속으로 들어가면 귀둔리라는 마을에 당도할 수 있다.

바로 이 마을이 변씨와 봉환이가 초봄에 다녀왔던 인제 점봉산의 산나물 집산지였다. 귀둔리에서 보면 점봉산은 동쪽에 높다랗게 솟아 있었다.

그 점봉산 때문에 귀둔리 주민들은 농삿일을 미뤄둘 만치 산나물 뜯기에 여념이 없었다. 일년에 산나물로만 호당 2백만원에 가까운 소득을 올리기 때문이었다.

나물이 나는 곳은 점봉산 남쪽인 작은 점봉산에서 아래쪽 가칠봉 사이에 있는 곰배령과 챗목 사이의 능선이었다. 귀둔리 사람들은 큰덤붕이라고 부르는 점봉산 정상 부근에도 산나물은 많았지만 너무 가막져서 오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오작골 농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산나물이 많다는 뜻인 챗목까지는 한시간 반이면 당도할 수 있었다. 챗목 일대는 4월 초순부터 얼레지를 비롯해서 취나물.고비.참나물.고사리 같은 고랭지 산나물들이 지천이었다.

고랭지 채소가 그렇듯 고랭지 산나물도 맛이 유난히 뛰어나서 점봉산 산나물의 성가를 높여 주었다.

작은 점봉산과 챗목 일대의 묵나물을 가공하는 산채막들이 늘어서 있는 것만 보아도 챗목 일대가 소문난 산나물의 생산지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한씨네 행중들이 귀둔리를 찾았던 5월 중순 무렵에는 참나물이 많이 날 때였다.

참나물은 생짜로 먹기 때문에 뜯어서 산 아래로 내려오기만 하면 곧장 현찰로 바꿔졌다. 농협에서 나온 채집 차량이 오작골 농로 끝에서 산을 내려오는 채꾼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대로 현찰로 바꿔주는 직거래 통로가 마련되었기 때문이었다.

초봄에 왔을 때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예측하지 못했던 경쟁자들과 마주친 셈인 그들은 마을 귀퉁이에 차를 세우고 몰래 산속으로 들어가 산중턱에서 채꾼들을 만나 농협에서보다 비싼 흥정으로 산나물을 채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제각각 귀둔리로 숨어들어 도망치듯 마을을 빠져나온 것이었다.

그들에게 고가로 산나물을 팔아넘긴 채꾼들도 농협사람들을 만날까봐 산길을 우회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벌어진 셈이었다.

채꾼들이 농협과 직거래를 튼 것이라면 중간상인들의 농간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져 상응하는 소득이 보장되겠으니 그만한 다행이 없었다. 또 농협 사람들이 산속 오지 마을까지 찾아와서 산나물을 현찰로 수납한다면, 제 할 몫을 다하고 있는 것도 틀림없었다.

한씨네 행중들로선 예상할 수 없었던 복병을 만난 셈이었지만 농협 사람들을 무턱대고 비방할 수는 없었다. 결국은 넋두리로 뒤틀린 가슴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씨발. 뜨내기 난전꾼 신세 고달픈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 다를 게 없구만. 맞돈 주고 산나물 사서 푼돈 받고 팔자는 일에 북에서 내려온 간첩들처럼 산속으로 들어가서 젊은 것들도 아닌 할망구들을 귓속말로 꼬드겨서 물건 사보기는 또 내 평생에 처음이네. 우리 같은 뜨내기 잡살뱅이들 살아남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 변씨의 불평에 윤씨도 오랜만에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그러게 말이야. 태호는 산채막까지 올라갔다가 허탕치고 내려오는데 낯선 놈이 산속을 대중없이 헤매고 있는 것을 발견한 채꾼들이 간첩 나타났는가 해서 사뭇 뒤를 살피더란 게야. 태호가 간첩은 아니지만 신고를 하고 검문을 당하면 어차피 곤욕은 치러야 하지. 그래서 걸음아 날 살려라 산을 내려오면서 곰삭은 애국가를 목청 뽑아 불렀다는 게야. "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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