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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뷰]KBS2 '거짓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2일 막을 내리는 KBS 2TV 월화 미니시리즈 '거짓말' (연출 표민수) 을 그동안 지켜 보면서 느낀 생각은 국내에도 '컬트 드라마' 가 등장했구나 하는 것이다. '컬트' 란 특정계층의 열렬한 숭배를 받는다는 뜻으로, 미국의 '트윈픽스' 나 'X파일' 등은 대표적인 컬트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독특하다. 인기척도로 흔히 꼽는 시청률은 20%도 채 안된다.

'스타' 가 출연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PC 통신에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하며 자신의 감상을 쏟아놓는 시청자들이 적지않다.

무엇 때문인가. 인간사 이면의 추악함을 파헤치거나 외계인 등을 쫓는 외국 드라마와 달리 이 드라마는 일상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이 못 낳는 젊은 부부와 남편직장 노처녀 상사와의 삼각관계, 싱숭생숭한 중년의 로맨스, 사건기자와 부랑아 처녀의 운명 같은 만남. 이 세 축을 오가며 드라마와 호흡을 같이 하다보면 어느새 '남의 불륜' 은 '나의 로맨스' 가 된다. 가슴저미는 대사, 성 (性)에 대한 천박하지 않은 직설 화법, 문득 찾아온 사랑을 움켜쥐려는 두 남녀의 처지를 찬찬히 풀어내는 전개 등은, 특히 사랑.결혼.권태.이혼이라는 변곡점위에 서있는 30대 시청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주인공과 동일시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성우 (배종옥) 를 역성들거나, 은수 (유호정) 를 동정하거나, 준희 (이성재)에 공감하게 되는 '상처 있는 영혼들' 은 왜 자신이 그들의 편에 서는지 얘기하고픈 충동에 빠져들게 된다.

이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작가는 노희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과 '내가 사는 이유' 가 연속드라마 경력의 전부지만 '어른' 들의 마음을 읽어내리는 노회함은 서른 두 살 처녀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다.

김수현의 '직설' 과 김운경의 '서민내음' 과 송지나의 '세밀함' 을 고루 이어받은 그는 모든 사람들이 방패처럼 들고있는 위선과 위악에 대해, 그리고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작가의 이런 생각을 거의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 젊은 연출가의 잠재력도 한몫했다.

배종옥을 비롯, 유호정.김상중 등 김수현 사단의 신예들이 보여준 기분 좋은 변신은 분명 한국 드라마에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을 만 하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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