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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에세이]한국인의 '이상한' 음식주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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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맨해튼 한복판의 K식당,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이는 뉴저지 포트리의 D식당 등은 뉴욕 일원의 한국음식점 가운데서도 일류로 꼽히는 곳이다. 한국 사람들 못지 않게 미국인들이 즐겨찾기 때문인듯 메뉴도 상당히 '현지화' 돼 있고, 실내 분위기라든가, 손님 접대방식 등도 고급스러운 편이다.

물론 음식값도 여느 고급 레스토랑 못지 않게 비싸다. 옆자리에 앉은 벽안 (碧眼) 의 남녀가 서툰 젓가락질로 불고기를 굽거나 잡채.파전 등을 뒤적거리는 모습은 제법 구경거리다.

그런데 이런 국제화된 식당에서도 가끔씩 한국인 단체손님과 종업원들이 합작으로 '너무나도 한국적인 풍경' 을 연출, 오히려 현지인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일전에 한국에서 출장온 '고위층' 인사들과 저녁식사차 D식당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국식' 으로 먼저 술과 안주거리를 시켜 먹고 마시는 중에 한 종업원이 식사주문을 받으러왔다.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20여명을 상대로 분주히 주문을 받는 종업원을 바라보던 한 인사가 갑자기 큰 소리로 교통정리에 나섰다.

"자, 식사주문들 합시다. 어이, 종업원, 메뉴가 뭐뭐 있지요? 아, 그래요? 자, 번거롭게 굴지 말고 몇개로 통일들 합시다.

자, 갈비탕 손들어요, 비빔밥 손들어요…. " 한국에서 행세깨나 한다는 반백의 신사들이 줄줄이 손을 치켜들었다. 종업원은 복잡한 식사주문이 간단히 끝나게 되자 신이 난 듯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미국인 일행은 때아닌 '거수투표' 에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접대하는 입장에 있던 현지의 A씨가 종업원을 불러 "필기구를 들고와 개별적으로 물어 다시 주문을 받으라" 고 나무라자 종업원은 잘못을 알아차리고 즉시 시키는대로 했다. 이 종업원은 나중에 A씨에게 "분위기에 편승해 실수했다" 고 사과했다.

한국에서는 모르지만 거수 (擧手) 주문과 같은 행태는 미국의 식당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은 이런 식의 행동이 미국에서는 잘못된 것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폐습을 가르친 셈이다.

이날 식당을 찾은 미국인들의 눈에는 종업원의 무례보다 제대로 대접받을 권리를 자진해 포기한 손님들의 과공 (過恭) 이 더욱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뉴욕=김동균 dk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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