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표 뽑던 날…한나라당 이런 모습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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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은 벌판으로 달려가자. 젊음의 태양을 마시자…." 엉성했다. 소리도 갈라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환호가 터졌다. 19일 오후 4시20분.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열린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 한나라당 의원 5명이 무대에 올랐다.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의 정두언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동아대 교수 출신의 박형준 의원이 기타를 멨다. 기자 출신의 심재철 의원은 색소폰을 물었다. 정문헌 의원이 드럼 앞에 앉았다. 키보드는 당 사무처 출신의 김희정 의원이 잡았다. 모두가 청바지나 양복바지에 셔츠차림. 보컬의 이름은 '드림 07'. 2007년 집권을 위해서라고 한다. 가만있어도 국민의 눈과 귀가 정치에 쏠리는 시대는 갔다. 이제 정치가 국민을 찾아나서는 시대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시트콤 정치 시대다. 엄숙했던 정당의 전당대회가 국회의원들의 학예발표회 같은 경연장으로 바뀌고 있다. 흥행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감성정치 시대의 한 단면이다.

▶ 19일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의 식전행사에 등장한 국회의원 보컬그룹 '드림 07'. 왼쪽에서 둘째부터 김희정(키보드).심재철(색소폰).박형준(기타)의원이 연주하는 가운데 리드 싱어인 정두언 의원(맨 왼쪽)이 춤을 추며 '젊은 그대'를 열창하고 있다. 심 의원은 연습하느라 입술이 부르텄다. [김형수 기자]

"한나라당이 경로당.수구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보기 위해 지난달 말 보컬팀을 결성했다"고 심재철 의원은 말했다. 일주일에 서너 차례 서울 연희동의 음악연습실에 모여 밤 12시를 넘기며 연습했다고 한다. 색소폰을 맡은 심 의원은 그 때문에 입술이 퉁퉁 부어올랐다. 이들의 뒤를 이어 의원 보좌진 6명으로 구성된 '고구려 AD410'도 공연에 나섰다. 고흥길 의원의 비서관인 이재원씨를 주축으로 6명의 보좌.비서관들로 구성된 이 팀도 이달 초 결성됐다. 팀명은 고구려가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시기인 '기원후(AD) 410년'을 기념하면서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지었다고 한다. 이들은 통이 큰 하얀 바지에 칼라가 큰 꽃무늬 셔츠를 입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흉내냈다. 이 중 한명은 구레나룻을 붙였다. 이날 행사에 정당 행사의 단골손님인 연예인은 거의 없었다. 식전 행사에서는 연극 난타를 흉내낸 퍼포먼스 패의 얼음 깨기가 있었다. 칼로 부패정치를 상징하는 얼음을 두들겨 부수는 것이었다. 여기에 서울 지하철 노조위원장 출신의 배일도 의원이 나섰다. 놀이패들과 함께 막춤을 춰댔다. 폭소가 터졌다. 객석에서 지켜보다 함께 춤을 추는 당원들도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의원들 중엔 노타이 차림이 많았다. 대회 주최 측이 권유한 복장이었다. 단상 위의 자리도 없앴다. 이날 행사는 정병국 의원이 기획했다. 그는 "권위적인 국회의원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게 이번 전당대회의 개념"이라고 했다. 차떼기 정당, 노인당의 이미지를 불식하고 젊음과 탈권위의 새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한 후보는 연설에서 "고스톱에 스리 박이 있는 것처럼 이 정권도 스리 박이 있다"며 "간첩을 민주화 인사라고 하는 광(狂)박, 노사모 박수 치는 노박, 국민 상대의 협박이 있다"며 거친 언사로 현 정권을 비난했다. 이날 전대에선 박근혜 의원이 대표로 다시 선출됐다. 이철희.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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