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정상, 중국 움직일 방도 논의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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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우리는 북한의 핵 개발 의도를 둘러싼 논쟁은 끝났다고 판단한다. 2006년 북한이 첫 핵실험을 했을 때만 해도 협상용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던 게 사실이다. 체제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핵 프로그램과 맞바꿀 목적에서 핵 개발에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6자회담에 매달린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그동안 부인했던 우라늄 농축 실험 사실까지 스스로 시인하면서 협상용이란 분석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핵무기 보유 자체가 목적임이 분명해진 것이다. 우리가 현 사태를 1·2차 때보다 훨씬 심각한 3차 핵위기 상황으로 보는 이유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설득하고 회유한다는 것은 이제 우스운 일이 됐다.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에 따른 강력한 대북제재를 최우선적 선택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늘 새벽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확고한 ‘북핵 불용’ 원칙을 재확인하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 보상하고 대화를 재개하는 과거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은 이 같은 상황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제재의 실효성이다. 중국이 마음먹고 달려들지 않는 한 제재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그 틈을 타고 북한은 외부와 담을 쌓은 채 핵 보유고를 차곡차곡 늘려 나가려고 획책할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뺀 5자회담 개최를 제안했다지만 역시 변수는 중국이다. 중국이 거부하면 소용이 없다. 따라서 한·미 정상의 이번 대화는 어떻게 하면 중국을 움직여 대북제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느냐에 맞춰졌어야 한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 깊숙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졌기를 기대한다.

워싱턴 특파원 출신 모임인 한·미클럽이 그제 워싱턴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문창극 본지 대기자가 제시한 방안은 이 점에서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다. 한·미가 중국과 은밀한 외교를 통해 중국의 영향력이 북한에 제대로 행사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중국이 북한을 압박함으로써 떠안게 될 부담을 한·미·일이 분담한다는 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압박 결과 북한에 급변사태가 생길 경우 한·미는 중국의 이익에 반해 행동하지 않고, 중국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약속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인도나 파키스탄 같은 핵 보유국이 되면 동북아의 핵 도미노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제재를 하면서도 대화의 문은 열어둬야 한다. 그렇더라도 지금 국면은 제재를 통해 북한이 고통을 느끼도록 하는 데 주력할 단계이지 대화를 말할 국면은 아니다. 북한 스스로 대화에 나오겠다면 받아줘야겠지만 과거처럼 대가를 전제로 하는 방식은 그만둬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생길지 모르는 비상사태에 대한 대비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하고, 다른 나라는 조수 역할을 맡는다는 인식의 공유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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