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인도네시아 경제개혁 군이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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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수하르토는 물러났으나 열렬한 수하르토주의자들이 권력을 쥐고 반대세력의 예봉을 피할 만큼의 개혁을 하면서 수하르토체제를 지키고 있는 것, 이것이 '수하르토 이후' 인도네시아 사태의 알파요, 오메가다. 인도네시아 학생과 시민들의 5월항쟁은 이렇게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다.

정국은 불안할 수밖에 없고 정치적으로 살아남기에 급급한 하비비 대통령에게 지금 금융위기를 해결할 여유같은 게 있을 수 없다. 인도네시아 사태를 한층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수하르토주의자들 내부의 갈등이다.

특히 위란토 국방장관 겸 군총사령관과 하비비는 전략적으로 손을 잡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제휴는 학생들과 재야의 도전이 심각할 동안만 유효한 것이다. 새로운 체제를 위한 정치일정이 잡히면 두 사람은 경쟁관계가 된다.

하비비는 과학기술장관 시절 군장비와 관련된 일로 군부에 인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반발까지 사고 있던 사람이었다.

하비비 체제가 과도체제라는 것 때문에 인도네시아 경제는 붕괴에 가속이 붙었다. 금융기관들의 기능상실로 기업자금이 고갈되고 무역금융이 거의 중단된 상태다.

실업과 초 (超) 인플레로 국내수요가 바닥에 있다.

97년말 현재 외채가 국내총생산 (GDP) 의 2백18%, 금리 60%, 은행의 부실채권이 50%라는 절망적인 사정은 조금도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체제가 출범한다 해도 경제를 회생시킬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그것은 구체제, 특히 군부가 누리는 경제적 특권이 개혁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정부와 국제통화기금 (IMF) 은 지금까지 경제개혁에 관한 합의문을 세번 고쳐썼지만 개혁에 착수하려고 하면 번번이 기득권층의 벽에 부닥쳤다.

수하르토 일가의 특권이 박탈당해도 군부라는 걸림돌은 여전히 남는다.

인도네시아 군부는 네덜란드를 상대로 독립운동을 하면서 스스로 군자금 (軍資金) 을 조달하던 시절부터 돈벌이를 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처음에는 주로 화상 (華商) 과의 제휴로 기업자금을 조달해 32억달러 프로젝트인 자카르타의 수디르만 상업지역 개발에 참여한 것을 비롯해 제조업에서 서비스와 유통, 그리고 도로.항만건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비즈니스 활동을 벌여온 것이 이 나라 군부다. 리엠 시오 리옹은 군부와 손을 잡고 사업해 세계 굴지의 기업인으로 성장했고, 수하르토 일가의 사업 파트너로 수하르토 마지막 내각의 통산부장관을 지낸 보브 하산의 목재회사는 군부와 합작으로 인도네시아 최대의 목재회사로 성장했다.

그밖에도 목타르 리야디, 내피안 와난디도 위의 두 사람같이 군부의 사업파트너로 이 나라 경제계에 군림하기에 이른 것이 화교들이다. 군부가 운영하는 소비조합은 쌀.조미료.캔 식품.부엌용품.어린이들의 학용품.의류.과자까지 취급하고, 군용토지는 골프장.호텔업자와 휴양시설에 임대되고 있다.

60년대와 70년대 군부는 장교들을 미국의 경영대학원에 유학시켜 경영노하우를 배워 오도록 할 만큼 기업활동에 열성을 보였다. 국영 석유회사 페르타미나의 사장으로 전문경영인의 평가를 받은 이브무 수토워도 장교시절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군부는 합작이 아닌 순수 민간기업과 국영기업에도 많은 군인들을 파견근무시켜 수입의 일부가 군부로 흘러드는 장치를 만들었다. 군부가 쥐고 있는 이런 경제권과 함께 군인들의 합법적인 정치참여를 고려하면 두 가지 결론이 나온다.

하나는 하비비 다음의 대권경쟁에서 위란토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군부가 온갖 특혜와 반 (反) 시장적인 기업활동을 계속하는 한 이 나라의 경제개혁은 백년하청 (百年河淸) 이라는 것이다.

군부의 합법적인 정치참여와 기업활동은 수하르토체제의 하부구조였다. 이것이 위란토가 하비비와 제휴해 수하르토체제를 수호해야 하는 이유다.

IMF처방은 군부를 포함한 인도네시아의 특권층들에게 특권을 즉각 포기하라는 주문이었다.

그 특권층들이 바로 개혁을 수행할 사람들이라는데 이 나라의 고민이 있다. 사정은 절망적인가.

채권국가들과 IMF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개혁의 고통을 가장 많이 감당해야 하는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부가 누리는 것과 같은 특권을 포기시키면서 시장경제의 정착을 위해 주요 생필품에 대한 가격보조금을 지금같이 즉각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폐지해 나가야 한다.

5월항쟁의 직접 원인이 가격보조금의 폐지로 생필품 값이 폭등한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개인소득 1만달러이던 한국과 1천달러이던 인도네시아에 같은 개혁처방이 적용될 수는 없다.

IMF가 인도네시아의 특수사정과 타협하지 않으면 개혁을 추진할 정권의 안정이 보장되지 않고 급기야는 모라토리엄까지 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인도네시아 총외채 1천4백억달러의 3분의1을 차지하는 일본이 타격을 받고 그 주름살은 당장 한국에 미치고 동아시아의 정치도 불안해진다.

우리는 내 코가 석자라도 인도네시아 경제까지 걱정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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