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 평화협정안 통과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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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벨파스트 = 배명복 특파원] 북아일랜드 신.구교계 주민들이 22일 실시된 투표에서 70%가 넘는 압도적 지지로 평화협정안을 찬성한 것은 유혈분쟁의 종식을 향한 간절한 여망을 반영한 결과다. 물론 투표전부터 통과는 예상되던 일이었다.

단지 뚜렷한 입장차를 보여왔던 신.구교계 주민들의 이해를 조화시켜 얼마나 높은 찬성률을 얻느냐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평화협정안이 궁극적으로 '통일 아일랜드' 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믿는 구교계 주민들은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전폭적 지지를 보였다.

반면 북아일랜드의 영국 잔류를 희망하는 신교계 주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해 왔다. 신교계 주민들 사이에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서며 막판까지 마음을 못 정한 부동층이 거의 3분의 1에 이른 것도 이같은 이유때문이었다.

그러나 최종 발표된 71.12%의 찬성률은 전체 유권자의 60%를 차지하는 신교계 유권자중 절반 이상이 평화협정안에 찬성표를 던졌음을 의미한다. 그 배경에는 투표 이틀 전 현지를 방문, 5개항의 친필공약까지 제시하며 신교계 주민들의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노력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정치역량이 결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투표의 승자는 물론 피로 얼룩진 과거보다는 화해와 미래를 택한 북아일랜드 전체 주민이다.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블레어 총리와 데이비드 트림블 얼스터통일당 (UUP) 당수의 승리였다.

블레어 총리는 집권 1년만에 영국의 최대 골칫거리인 북아일랜드의 30년 유혈분쟁을 종식시키는 위업을 이룩했다. 북아일랜드 신교계 최대 정당인 UUP의 트림블 당수는 이번 투표에 정치생명을 걸었다.

UUP 소속 9명의 국회의원중 6명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그는 구교계 최대 정당인 사회민주노동당 (SDLP) 의 존 흄 당수와 손을 잡았다. 또 신교계 주민들이 무력단체 아일랜드공화군 (IRA) 의 정치조직으로 간주하는 신페인당의 게리 애덤스 당수와도 나란히 찬성운동을 벌였다.

찬성률이 60%를 밑돌 경우 그는 신교계 주민의 과반수 지지조차 확보에 실패, 정치생명이 끝난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었다. 그러나 이번 투표가 71%의 찬성률로 막을 내림으로써 다음달 25일 실시될 북아일랜드 자치의회 선거에서 평화협정 반대주의자들의 진출을 억제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자치의회와 자치정부가 평화협정을 지지하는 신.구교계 인사를 주축으로 구성될 기반이 마련됐고 평화협정도 순조롭게 이행될 전망이다.

평화협정안 통과로 북아일랜드의 문제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긴 평화정착 과정의 시작일 뿐이다.

이번 투표에서 드러났듯 아직도 상당수 신교계 주민들은 평화협정에 의혹과 불안감을 갖고 있다.이들을 어떻게 안정시키느냐는 과제가 남아 있다.

특히 테러범 석방과 무장단체 해체 및 무기회수, 경찰조직 재편 등 현안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돌발사태가 생겨 주민들의 불안감을 다시 자극한다면 평화협정 이행이 중대한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bmbm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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