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니뇨 영향 더위먹은 생태계 곳곳 혼란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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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엘니뇨 영향으로 전국에 30도 안팎의 때이른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도심에 모기.벌떼가 기승을 부리는 등 생태계 교란 조짐이 일고 있다. 21일에는 전북 정읍이 최고 33.2도까지 올라가고 서울도 31.4도를 기록한 가운데 올들어 처음으로 서울.인천에 오존주의보가 발령됐고 농작물.수산물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기상청은 "엘니뇨의 세력이 차차 약화되고 있어 7~8월께 수그러들 전망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긴 여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 밝혔다.

◇ 육상 생태계 변화 = 식물→곤충→조류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이 혼란에 빠졌다. 이상고온으로 식물뿌리에 기생하는 각종 해충이 일찍 알을 깨면서 나뭇잎 대신 새순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특히 6~7월이 제철인 식물들이 5월에 움트면서 곤충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영남대 이종욱 (李鍾郁.생물학) 교수는 "곤충이 이상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새들의 먹이가 줄어들어 먹이사슬의 균형이 쉽게 파괴된다" 고 말했다.

또 평년보다 보름 이상 일찍 찾아온 여름철새들은 호르몬 분비 이상으로 번식 시기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 서울대 이우신 (조류학) 교수도 "흰눈썹 황금새.큰유리새 등 여름철새들은 생태계 변화에 민감해 호르몬 분비 부족으로 암수가 제구실을 못할 가능성이 크고 부화되더라도 정상적인 발육이 어려울 수도 있다" 고 말했다.

20일 서울.인천지역에 이어 21일 광주시내를 기습한 벌떼 소동도 엘니뇨에 따른 이상고온이 주원인인 것으로 분석됐다. 4월부터 시작된 초여름 날씨로 벌이 예년보다 훨씬 빨리 자랐지만 양봉농가에서 미처 '분봉 (分蜂)' 을 안해줘 벌들이 새 집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 수산물.수질 피해 =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비브리오 패혈증 주의보가 예년보다 보름정도 빠른 12일 발령되자 수산시장과 횟집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경기도과천시 D일식집 朴모 (43) 사장은 "손님이 평소보다 3분의1 수준으로 줄어 비브리오 패혈증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며 울상을 짓고 있다.

동해안 가리비양식장의 어획량도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석회 조류 (藻類) 의 이상번식에 따른 백화 (白化) 현상으로 수산물도 격감하고 있다.엘니뇨의 영향은 먹는 물에까지 미쳐 팔당호의 경우 이미 이달초 '클로로필 - a' (플랑크톤 엽록수 숫자) 농도가 녹조주의보 기준을 넘어섰으며 남해안에는 적조 조짐을 보이고 있다.

◇ 농작물 피해 = 수박.참외 등 여름과일이 예년보다 보름정도 일찍 출하됐지만 비를 자주 맞아 맛이 떨어지고 작황도 좋지 않다. 마늘.양파 등 겨울에 파종한 농작물은 잎만 무성할 뿐 알이 작게 드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농림부 농산기술과 박해상 (朴海相) 과장은 "이상고온으로 병충해가 예년보다 20~30% 늘고 있어 모내기를 한 논에 물을 깊이 대고 질소질 비료 (잎 성장촉진제) 를 가급적 주지 말 것" 을 당부했다.

양영유 기자

〈yangy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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