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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청와대 심부름센터가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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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를 쇄신파의 퇴진 압력으로부터 구한 건 ‘친박’이었다. 특히 이성헌 제1사무부총장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 의원은 조기 전당대회와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는 쪽을 ‘장마철 개구리’와 ‘난파선의 쥐’에 비유해 정면 비판하며 당내 여론의 흐름을 돌렸다.

1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평소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던 그가 오랜 침묵을 깬 까닭을 물었다. “문제의 본질은 젖혀두고 조기 전당대회만 얘기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맹장염은 수술해야지, 진통제로 되나
-‘개구리’ 발언을 문제 삼는 이들이 많았다.
“누구를 모욕하려는 게 아니라 쇄신 논의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싶어서였다. 연찬회 때 박 대표를 맨 앞자리에 앉혀놓고 20여 명이 인격살인에 가까울 정도로 모욕적인 발언을 하면서 물러나라고 얘기했다. 자신들이 책임 지겠다는 각오는 보이지 않고 당대표와 지도부에 책임을 전가했다.”

-쇄신을 주장하는 의원들은 책임질 만한 당직을 맡고 있지 않은데.
“그들 중 몇 명은 2005년 혁신위원회 일원으로 ▶당권·대권 분리 ▶집단 지도체제 ▶원내 중심 정당화 ▶상향식 공천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공천 등이 제대로 안 될 때 그들이 단 한번이라도 얘기한 적이 있나. ‘내가 만든 제도가 제대로 운영이 안 됐다, 반성한다’이런 말부터 해야 하지 않나. (쓴웃음을 지으며) 사실은 저도 당직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책임이 많다.”

-제1사무부총장이니 당의 문제점을 잘 알겠다.
“당내 민주화가 문제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선출된 뒤 박희태 대표가 화합 차원에서 친박계 정갑윤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추천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걸로 안다. 당대표가 사무총장도 마음대로 못 쓰는 게 지금의 당·청 관계다. 당은 청와대의 심부름센터가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센터가 돼야 한다.”

-당이 청와대에 끌려다닌다는 말인가.
“청와대가 당을 하부 기관처럼 여긴다. 한나라당이 홍보 비용 때문에 한 달에 몇 억원씩 적자가 나는데 당 외부의 요구 때문에 줄이질 못 한다. 대선공약 사업 중에 수정할 게 있어도 청와대가 요구하면 그대로 복명한다. 당이 자기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쇄신파도 ‘강한 당대표’를 이유로 박 대표의 퇴진을 주장한다.
“맹장염에 걸린 환자가 진통제를 먹어도 안 나으니까 다른 진통제를 사오라는 격이다. 수술해서 맹장을 떼내야 한다. 다른 대표가 온들 무슨 변화가 있겠나. 핵심은 청와대 부분을 직접 떼내 수술하는 것이다. 쇄신특위의 역할은 당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안 되는 게 제도의 문제인지, 인적 구성의 문제인지, 외부 환경의 문제인지 짚어내는 것 아닌가. 조기 전당대회를 해서 당대표 바꾸자는 얘기부터 하니 잘못됐다는 거다.”

-‘이재오 불출마’를 전제로 한 조기 전당대회 주장도 있었다.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진 모르지만 적절한 방식은 아니었다. 그분의 권한에 대해 누가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나. 긴 말씀을 드리기보다는…. 민심은 참으로 무섭다. 우리 당이 경주 재·보선에 정종복 전 의원을 공천했지만 끝내 이기지 못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곱씹어보면 뭘 해야 할 것인가 결론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정두언 의원이 청와대와 당 지도부, 친박을 기득권이라고 비판했다.
“조기 전당대회에 반대하면 ‘반쇄신 세력’이고 ‘기득권’이라고 매도하나. 이거야말로 우리 당을 분열로 모는 것이다. 지난해 서대문구 주민 신년하례회에서 정 의원이 인사말을 하면서 ‘내가 지금 장관 인사를 하고 있는 중인데 쓸 만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이 정부에서 장관 인사를 직접 한 사람이 기득권자인가, 신문 보고야 아는 사람이 기득권자인가. 적반하장도 유만부득이지….”

-지난해 초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지 않나.
“아니, 생각해 봐라. (정 의원이) ‘이제 장관직도 포기했다’고 했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장관직 생각도 안 한다. 지금도 대통령을 만나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명 아닌가. 어떻게 친박이 기득권 세력인가. 박근혜 전 대표를 포함해 우리가 당 사무처 직원 하나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나.”

-박 전 대표 한마디에 정국이 좌지우지될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이 있지 않나.
“그건 국민의 ‘신뢰’다. 탄핵 정국으로 당이 큰 파도에 쓸려갔을 때 박 전 대표가 자신을 던지면서 얻은 것이다. 그걸 기득권이라고 말한다면 잘못이다.”

친박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해
-한나라당 지지율이 민주당보다 떨어졌다.
“거대 여당이 야당에 무기력하게 끌려만 다니는 모습에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층조차 떨어져 나갔다. 전통적 지지 세력도 못 추스르면서 어떻게 국민 통합을 얘기할 수 있겠나. 청와대에서 당과 우리의 전통적 보수 지지세력부터 추슬러야 한다.”

-170석 한나라당이 왜 무기력할까.
“정권을 잃고 소수당으로 전락한 야당을 고려해 원내 전략을 세우다 보니 전혀 명분없는 생떼에도 끌려다니게 됐다. 또 당이 청와대와 행정부의 들러리 역할에 그치면서 많은 의원이 자기 역할에 대해 무력감을 토로하고 있다. 언론 보도를 통해서야 정부가 하는 일을 알게 되니 과연 내가 집권 여당의 일원인가 회의도 들고 상실감도 느끼는 것 같다.”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2선 후퇴로 당에 변화가 있을 것 같나.
“이 전 부의장이 다선 중진 의원으로서 현 정권의 성공과 화합을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2선 후퇴하겠다고 했지만 자의인지, 타의인지 분간이 잘 안 된다. 만약 소위 권력싸움의 일환으로 이상득계를 후퇴시키고 이재오계를 전진 배치한 것이라면 권력 핵심부 내부의 바통 터치가 지금 무슨 의미가 있겠나. 친이-친박을 떠나 당원이라면 누구나 이 정권을 잘 운영해 성공하도록 해야 한다. 몇몇 사람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해 다른 세력을 힘으로 굴복시키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어려운 시기에 나서지 않는 친박이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있다.
“한나라당 구성원 그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이 친박의 책임을 묻는다면 그 지적을 받아야 한다. 저도 큰 책임을 느끼고 많이 반성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주류 책임론’을 내걸고 대통령을 중심으로 친이가 주도적으로 하겠다면서 그쪽에서 아쉬울 때만 (친박에게) 무책임하다는 건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재·보선 지원 유세에 나서는 모습을 기대하는 게 아니겠나.
“(사견임을 전제한 뒤) 지원 유세는 결국 박 전 대표가 책임감을 가지고 국민 앞에서 얘기하는 것인데, ‘내가 앞으로 이런 일을 해보려 하니 이 후보를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은 있어야 하지 않나. 그냥 ‘우리 당 구성원이니까 저를 보고 뽑아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상황은 수용을 못 하시는 게 아닌가 싶다.”

-친박이 납득할 수 있는 ‘친박 화합책’은 무엇인가.
“누구 자리를 달라는 게 아니다. 당 운영을 민주적으로 하자, 당헌·당규대로 하자, 당이 (청와대로부터) 독립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미운 놈 떡 하나 주듯 ‘원내대표 너희 줄게’, 이렇게 접근한다. 대통령께 묻고 싶다. 박 전 대표를 국정 동반자로 생각하겠다는 얘긴 이제 취소가 된 건지, 아니라면 동반자란 게 뭘 말씀하시는 건지. 청와대가 비공개 회동하자 해놓고 사전에 아무 말 없이 만난 사실을 공개해 버렸다. 그런 약속 하나 못 지키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나. 까다롭고 어려운 화합책이 아니라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친박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의원에게 물었다.

“저희가 반성할 게… 많이 있죠.” 그가 한참 동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저희가 아직도 당내에서 친이-친박으로 구분해서 불리는 것 자체가…. 친한나라당, 친대한민국이 돼야 하는데….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정치가 국민을 좀 편안하게 해줘야 되는데 걱정을 끼치게 한 건 친박이든 친이든 다같이 반성할 일입니다.”
2시간20분의 인터뷰가 끝났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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