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예금 보장' 다시 생각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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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은행은 특별한 장사다. 그 자체가 결제시스템이고 신용을 창출하며 정부의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수단이 된다.

그래서 은행시스템의 안정은 절대적이다. 예금보험은 그런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 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 미국에서는 계좌당 보장금액을 10만달러로 제한하고 있다. 정부는 IMF 지원요청 이틀전인 지난해 11월19일 금융시장 안정 차원에서 2000년말까지 은행예금 전액 (이자 포함) 을 보장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사정은 이해하지만 악수였다. 부실한 은행일수록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해 높은 금리를 제공할 테고 고객은 한푼이라도 더 주는데를 찾을 것이다.

정부가 보증을 섰기 때문이다. 물건을 대줬다가 거래처가 망하면 대금 회수를 포기하는 것이 상관행이다.

그렇다면 거래하던 은행이 망해 예금을 떼이는 것도 정상으로 봐야 한다. 은행 도산이 국민경제에 미칠 파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업종에 없는 예금보험제도가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당장 금융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나라가 결딴날 지경인데 '파장' 이란 볼모가 그렇게 중요한가. 이 약속은 파기돼야 한다.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마련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다만 이제 와서 없었던 일로 하기는 어려운 만큼 원래대로 2천만원까지 보장하고 그 이상에 대해선 가령 금리 8%, 3년 거치 5년분할 상환하는 국채로 교환해 주면 어떨까. IMF 이전의 시중금리 수준이 12%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 이상의 금리는 금융위기를 기화로 횡재하고 있는 셈이다. 약속 번복으로 일시적 혼란이 예상되지만 오히려 좋은 은행, 나쁜 은행을 가리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은행 직원은 월급을 꼬박꼬박 받고, 예금자는 높은 이자를 손쉽게 챙기는 동안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그 은행의 실패에 책임져야 한다면 아무래도 억울한 일이다.

권성철 전문위원〈jing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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