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등 농촌 공동작업 되살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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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전북남원시보절면진기리 이춘자 (李春子) 씨는 지난 11일 이슬비를 맞으며 동네 아주머니 20명과 함께 자신과 이웃의 밭 15마지기에 고추묘를 옮겨 심었다. 오전에 일이 끝나 오후엔 동네 밭을 돌며 콩.참깨 등도 심어주었다.

이 마을은 지난 겨울 부녀회에서 "동네에 나이든 사람들이 많으니 품앗이를 해 서로 돕자" 고 뜻을 모은 뒤 올 봄부터 밭일 등을 서로 도와 주고 있다.

李씨는 "지난해만 해도 하루 2만~3만원씩에 사람을 사서 썼지만 올해는 돈 한푼 안들이고 동네사람들끼리 품앗이를 한다" 며 "공동작업을 하면서 애들 교육문제 등 집안 대소사도 서로 알고 걱정해 줘 정이 더 두터워졌다" 고 말했다. 군산시대아면복교리 신복마을 주민들은 모내기 등 농삿일을 함께 하기 위해 '일손계' 를 운영하고 있다.

계원 15명은 돌아가면서 서로의 논.밭일을 도우면서 땅주인이 모내기는 1필지 (1천2백여평) 당 10만원, 보리베기는 15만원씩을 내놓는다. 이 돈은 추수후 각자의 논.밭 크기와 작업 참여일 등을 따져 서로의 몫으로 분배한다.

도시화와 물질적 풍요, 이기주의 등으로 80년대 후반부터 사라지기 시작한 품앗이 등 공동작업이 최근 농촌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특히 일부지역에선 두레까지 결성돼 전통적인 '농촌공동체' 의 복원도 기대되고 있다.

강원도에서는 고랭지채소단지를 중심으로 협업농 체제인 '두레' 를 결성, 운영 중이다. 강릉.태백시와 정선군 등 11개 시.군이 만든 23개의 두레는 채소의 안정적 생산을 위해 자재구입 등 작업과 출하를 공동작업으로 처리한다.

공동작업의 확산은 종전 농번기에 투입되던 도시인력이 최근 들어 과수원 등을 빼고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 한 원인으로도 작용한다. 관계자들은 품앗이.두레 등이 앞으로 더욱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기 일을 끝내고 여가를 즐기려는 종전의 농촌풍조가 절약정신으로 바뀌고, 이앙기.트랙터 등의 보급으로 노인.부녀자들이 직접 농사에 나서면서 품앗이 등 공동작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농촌진흥원 이석태 (李錫太) 원장은 "최근 농촌에 품앗이가 생활패턴으로 다시 자리잡고 있다" 며 "이는 적기영농에 도움을 줘 수확량을 높이고 두레 등 농촌공동체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고 내다봤다.

전주 = 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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