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사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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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호 14면

나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카메라 앞에만 서면 영 어색하다. 나름대로는 웃는 것인데 사람들은 오히려 무섭다고 한다. 그렇다고 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나는 카메라 뒤에 서는 걸 좋아한다. 아내는 요즘 사람인지 카메라만 갖다 대면 웃는다. 아내는 그냥 얼굴도 예쁘지만 웃는 모습은 더 예쁘다. 웃을 때 눈이 이효리 눈처럼 되고 이가 여덟 개가 보이니까. 그런데도 남편이 자신의 사진을 찍는 것은 싫어한다.

남편은 모른다

얼마 전 우리는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그날은 비도 오는 데다 아이들은 집에 없고 내외 둘뿐이라 밖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창가 자리에 앉는다. 비에 젖은 바깥 풍경 때문인지 어두운 실내 조명 때문인지 식당 안 분위기는 로맨틱하다. 다른 시간, 다른 장소는 사람을 다르게 보이도록 만든다. 남편의 눈빛은 그윽해지고 아내의 눈빛은 수줍어진다.

남편은 휴대전화 카메라로 아내를 찍는다. 아내는 자동적으로 웃는 포즈를 취하면서도 싫다고 투정한다.
“찍지 마. 사진 잘 안 나온단 말이야. 찍으려면 좋은 카메라로 찍든지.”
아내는 곱게 눈을 흘긴다. 남편의 가슴이 벌렁거린다. 남편은 셔터를 누르고 아내는 자동적으로 웃는다.

빗방울이 거세진다. 번개가 번쩍한다. 남편은 바쇼를 떠올린다. “인생은 찰나, 믿지 못하겠거든 번개를 보게.” 우리가 사진을 찍는 행위는 붙잡을 수 없는 찰나의 인생을 어떻게든 붙잡으려는 헛된 손짓인지 모른다. 나는 하이쿠를 이렇게 바꾼다. “인생은 찰나, 믿지 못하겠거든 사진을 보게.” 아내는 믿지 못하겠는지 사진을 보자고 한다.

“지워요. 밉게 나왔잖아.”
“예쁘기만 하네.”
“사진 보면 다 보여. 원래 찍는 사람이 사랑을 가득 담아 찍어야 예쁘게 나오는데. 당신은 나 사랑 안 해.”

아무리 남편이 사랑을 담아 찍어도 사진이 잘 나오기는 힘들다. 그것은 수없이 많은 표정을 짓고 자세를 바꾸는 사람을 단 하나의 표정과 자세로 나타내는 데 있다. 사진 속 단 하나의 이미지가 그 사람을 대표할 수 있을까? 사진의 결정적 난처함이란 이런 것이다.

며칠 후 아내에게서 전화가 온다.
“그거 안 지웠지? 저번에 휴대전화로 나 찍은 사진 있잖아.” “응. 근데?”
“그거 좀 보내줘요. 대의원 선거에 필요하대.”
“그렇게 중요한 곳에 그런 사진을 쓰면 어떡해. 그거 해상도도 낮아서 사진이 흐릴 텐데. 그리고 그 사진 맘에 안 들어 했잖아.”
“몰라. 아무튼 빨리 보내줘요.”

그렇다. 인생은 찰나, 믿지 못하겠거든 아내를 보게.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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