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슬그머니 징계 풀린 정수근 … 원칙은 어디로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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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야구위원회(KBO)가 12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정수근(32·롯데)에게 내려진 무기한 실격 선수 징계를 해제했다. 이로써 지난해 7월 16일 만취 상태에서 시민과 경찰관을 폭행한 정수근은 11개월 만에 팀에 복귀할 수 있게 됐다. 상벌위는 “정수근이 충분히 반성했다고 판단했다. 롯데 구단을 믿고 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징계를 풀었다”고 설명했다. 절차상 문제는 없다. 야구규약 41조는 ‘무기 실격 선수라도 총재가 이후 정상을 참작하여 실격 정도를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수근 징계 해제는 야구계를 넘어 사회적 논란거리다. 일부에서는 ‘야구선수로 명예회복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무기 실격 선수를 1년도 안 돼 복귀시키는 일은 그릇된 전례를 남길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KBO는 잘 짜인 한 편의 시나리오처럼 정수근에 대한 징계 해제를 유도했다. KBO의 한 간부가 공개적으로 “롯데는 왜 정수근 징계 해제를 요청하지 않나”라고 분위기를 조성했고, 롯데는 기다렸다는 듯 해제 요청으로 발을 맞췄다. 결론이 정해진 채 상벌위가 열린 셈이다.

상벌위는 정수근으로부터 재발 방지의 다짐도 받지 못했다. 그는 2004년에도 시민 폭행과 음주운전으로 무기한 출장 금지 징계를 받았다. 당시 KBO는 롯데의 해제 요청에 20경기 만에 그를 복귀시켰다. KBO 징계는 그때부터 ‘솜방망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롯데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롯데는 폭행 사건 직후 정수근에 대해 1년간 그라운드에 설 수 없는 ‘임의탈퇴’를 결정했다가 KBO가 징계를 하는 바람에 이를 철회했다. 정수근을 1년 동안 포기할 각오를 했던 롯데가 KBO와 손발을 맞춰 그를 징계에서 빼냈다. 원칙이 온데간데 없는 2009년의 프로야구다.

허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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