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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살인범' 검거] 유씨 연쇄살인 남은 의혹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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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유영철씨가 연쇄살인을 저질렀다는 경찰의 발표에는 몇가지 의문점이 있어 향후 수사 과제로 남게 됐다.

우선 유씨의 범죄 대상이 부유층 노인에서 출장 마사지사로 일하던 젊은 여성으로 갑작스럽게 바뀐 점이다.

유씨는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한달에 한번꼴로 주로 고급 주택에 살던 노인들을 살해해오다 올 3월부터 젊은 여성들을 주요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여기다 지난 4월에는 황학동에서 불법 CD 및 비아그라를 팔던 상인을 살해해 인천 월미도 앞바다에 버린 사건과의 연관성도 없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서울 혜화동에서 살인을 저지른 뒤 전화방에서 만난 여성과 교제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찾은 것 같다"면서 "그러나 이 여자가 결별을 선언하면서 여성에 대한 증오심이 생겼고, 이로 인해 무차별 살인행각을 벌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991년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했던 유씨의 본처도 마사지사 출신임을 감안할 때 경찰의 발표에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또 유씨가 6평 크기 자신의 원룸에서 11명의 젊은 여성들을 살해한 뒤 토막까지 냈다는 점도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유씨의 좁은 방에는 침대와 책상.냉장고 등이 갖춰져 있어 피해자의 저항이 있을 경우 혈흔 등이 남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특히 톱과 칼 등을 이용해 시체를 10토막 이상으로 분리한 뒤 비닐봉지 등에 담아 암매장한 과정에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찰 조사에서 혈흔 등 살인과 관련된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15일 새벽 검거됐던 유씨가 불과 하루 만에 열다섯번에 걸쳐 19명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순수히 자백했다는 점도 의문이다.

경찰은 "유씨가 초기 경찰조사에서 일부 살인사건에 대한 혐의를 인정한 뒤 이날 오후 달아났다가 다음날 오전 경찰의 불심검문에 다시 검거되면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범행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경찰의 이번 발표는 유씨의 진술에만 의존했을 뿐 범행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는 없는 상태다.

한편 이번 사건에서도 경찰의 수사력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다. 경찰은 지난해 서울 신사동 원로 교수부부 피살사건 때 재산을 둘러싸고 원한을 가진 면식범의 소행 가능성에만 수사의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다 올들어 부녀자 살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동일범에 의한 범행 가능성을 착안하는 등 수사 방향을 놓고 다소 혼선을 빚기도 했다.

더욱이 이번에 희생된 여성들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의 감을 잡지 못하다 한 시민의 결정적 제보에 따라 유씨를 검거하게 된 것이다.

이경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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