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해진 ‘광장’ … 민주당, 뛰쳐나온 길 돌아갈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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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5월 23일)로 6월 정국의 시작은 캄캄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1년 전 이맘때 촛불에 덴 기억이 있는 여권은 숨을 죽였고, 야권은 비판의 목소리를 키웠다. 지지율은 단숨에 역전됐다. 그렇게 맞은 6·10은 분수령이었다. 서울광장은 밤새 끓었다. 하지만 광장의 아침은 금세 냉정을 되찾고 있다. 정서만으로는 현실의 숙제를 풀 수 없다. 민주당이 여의도로 돌아와야 하는 건 대의민주주의가 부여한 의무 때문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광장 이후를 추스르기 시작했다. 6월 국회는 이제 늦둥이라도 낳아야 한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11일 민주당 내에선 “서울광장을 선점해 무난히 6·10 대회를 치러냄으로써 당의 존재감을 과시했고 소원했던 재야와의 연대도 회복했다”는 ‘자화자찬’식 평가가 쏟아졌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오랜만에 우호적으로 바뀐 국민의 시선을 느꼈다”며 “당이 전통적 지지층을 복원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대한 압박수위도 높였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11일 “어제 행사에서 시민들은 한결같은 염원으로 이 대통령의 변화를 촉구했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기조를 바꾸고, 운영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더 높은 수위의 압박이 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초선 의원은 “10일 집회 참가자의 절반은 각종 단체·정당들에 조직된 인파였고, 절반만 자발적 참여자로 보였다”고 지적했다. 다른 초선 의원도 “광장의 민심이 ‘민주당은 계속 거리로 나서라’는 목소리로 들리진 않았다”며 “모처럼 살아난 국민의 기대를 국회 안으로 안고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6·15와 노 전 대통령 49재 등) 다가올 정치일정마다 거리로 나서는 건 큰 공감을 못 얻을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6월 국회가 열흘 가까이 개원협상 날짜조차 잡지 못한 채 표류 중인 데 부담을 느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야당의 가장 강력한 투쟁 장소는 역시 국회”라고 주장했다. 당 지도부가 11일 한나라당과 물밑 접촉을 개시하고 원내 복귀 사실을 강조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풀이가 나온다. 우윤근 원내수석 부대표는 “우리는 만날 밖에만 나가느냐”며 “의원 개인이라면 몰라도 나가는 걸 막지는 않겠지만 당 차원에서 밖에 나갈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그러나 이날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법무부장관 파면 등 ‘5대 요구’를 여권이 수용해야 국회를 열 수 있다는 공식 입장을 고수했다. 당내에선 “5대 요구를 모두 받아내야 등원할 수 있다”는 강경론과, “비정규직·미디어법 등 ‘MB 악법’의 일방적 처리를 포기하고 특검·국정조사 약속을 받아내는 선에서 개원에 동의하자”는 협상론이 맞선다. 광장에서 국회로 U턴하기 위한 명분 찾기의 진통인 셈이다.

대표실 핵심 관계자는 “여당이 꿈쩍 않고 있어 일단 냉각기를 갖는 게 불가피하다”고 말해 개원 협상이 다음 주 초까지 미뤄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세균 대표는 이날 국회와 여의도 63빌딩에서 치러진 6·15 9주년 기념행사에 잇따라 참석했다. 민주당은 또 14일 진보진영 주최로 장충체육관에서 열릴 6·15 기념행사에도 의원들의 참석을 검토하며 다시 여권을 압박하려 하고 있다.

정치컨설팅업체 ‘포스커뮤니케이션’의 이경헌 대표는 “10일 시청광장에서 인파가 모이긴 했으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국민의 반정부 정서를 폭발시킬 정도의 정치적 이슈는 아니란 점이 명확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6월 국회를 열라는 여론이 높아질 전망이라 민주당은 5대 요구를 무조건 고집하기보다 부분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찬호·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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