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비정규직 논란, 일자리 유지가 우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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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 동향을 보면 4월에 잠깐 주춤했던 실업자 수가 5월 들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올해 들어 직장을 잃고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사람이 하루 평균 3000여 명, 매달 10만 명 가까이 쏟아지고 있다. 일부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가 어떤 형태로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될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월 노사민정이 일자리 나누기에 합의한 것도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 생각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이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직장을 떠나야 할 상황이 목전에 다가오고 있다. 7월 1일을 기점으로 법에서 정한 사용기간 2년을 넘긴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비정규직법)”에 의하면 기업은 2년 이상 고용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해고를 해야만 한다. 비정규직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법안의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상황과 기업 현실을 살펴볼 때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사용기간 제한으로 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면 좋겠지만 지금처럼 경영 사정이 어려울 때는 정규직 전환보다는 해고 쪽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한상의의 조사에서도 기업들은 기간연장이 되지 않을 경우 비정규직 근로자의 절반 이상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사용기간을 연장해줄 경우 비정규직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겠다고 응답한 기업은 80%를 넘었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경제계는 일찍부터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이 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해고를 걱정하는 상황이 닥칠 것임을 지적해 왔다. 필자도 2006년 비정규직법 제정 과정에 경제계 대표 중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 ‘정규직과의 차별은 없애되 사용기간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노동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전히 비정규직 근로자가 2년 이상 근무하면 대부분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으로 낙관하거나 강한 희망을 갖고 있는 듯하다. 또 비정규직이 일자리를 잃더라도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으므로 우려하는 만큼의 실직 사태가 초래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근로자 입장에서는 다른 직장의 정규직으로 취업하기가 극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간 연장을 통해 지금의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을 원하는 근로자가 상당히 많을 것으로 본다. 국가경제를 놓고 보더라도 2년 이상된 숙련 근로자가 다른 일자리를 찾아 적응하기까지 생산성과 효율성의 저하라는 새로운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법을 사수해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일견 이해되는 측면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시기에 자칫하면 실직자를 양산하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우선 조속한 법개정을 통해 눈앞에 다가온 비정규직의 실직대란을 막는 것이 급선무다. 국회가 손을 놓고 있을 때 정작 피해를 보는 쪽은 바로 생계위협을 느낄 수도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숙련된 인력을 어쩔 수 없이 해고해야만 하는 기업이다. 바람직한 해결책은 차별적 처우는 시정해 나가되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을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렵다면 2년이라는 기간을 4년 이상으로 연장해야 한다. 그것만이 비정규직의 대규모 실직을 막고 노동시장의 혼란을 줄이는 길이다. 그러한 연후에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무엇인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함께 찾아야 한다.

김상열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