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우디와 무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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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행을 최종예선 6경기만에 확정한 한국은 여유가 있었다. 선수들의 움직임이 그랬고 벤치의 전술 운영이 그랬다. 심지어 경기장 관중까지도 비록 골이 터지지 않았지만 스피디한 경기를 즐겼다. 반면 북한,이란과 피말리는 본선행 다투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조급했다. 자신들의 특징이라던 유연한 드리블도, 깔끔한 마무리도 좀처럼 보이지 못했다.

한국이 10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7차전에서 사우디와 0-0으로 비겼다. 4승3무(승점 15점)의 한국은 조 1위 자리를 굳게 지켰다. 3승2무2패(승점11점)가 된 사우디는 17일 홈에서 열리는 북한과의 최종전에 남아공행의 마지막 명운을 걸게 됐다. 한국은 사우디와 역대전적에서 4승7무5패를 기록하게 됐다.

◆수비 위주의 안정적 운영=한국은 포백 수비라인에 김동진-조용형-김형일-이정수를 내세웠다. 전날 최종훈련 때 주전멤버처럼 보였던 김창수가 벤치를 지킨 대신 중앙과 측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이정수가 오른쪽 측면을 맡았다. 공격 가담이 좋은 김동진이지만 좀 처럼 오버래핑을 하지 않았다. 중앙 미드필더 중에서도 조원희는 한국 진영에 주로 머무르며 상대 미드필더의 침투를 저지했다. 사우디는 한국의 두터운 수비를 좀처럼 뚫지 못했다. 물론 한국의 수비가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전반 12분 한국 진영 페널티지역 안에서 혼전 중 알샴라니에게 전광석화 같은 터닝슛을 허용했다. 슈팅 만큼이나 빨리 골키퍼 이운재가 팔을 들어 막으면서 실점은 하지 않았다. 이운재는 후반 15분에도 상대 역습상황에서 다시 한번 알샴라니를 선방, 실점 위기를 넘겼다.

◆빠른 공격으로 상대 위협=수비를 두텁게 세운 한국은 빠르게 공격을 전개했다. 전반 14분 세번의 터치 만에 이운재부터 상대 골라인까지 진행된 상황이 대표적 예였다. 이운재가 재빨리 던져준 공을 잡은 박지성의 드리블을 거쳐 곧바로 전방의 이근호에게 연결됐다. 이근호와 상대 골키퍼 사이에는 수비 1명 뿐이었다. 공 컨트롤이 길어 아웃됐지만 위력적인 장면이었다. 이근호는 빠를 뿐만 아니라 공에 대한 집중력으로 상대 수비수를 혼란에 빠뜨렸다. 전반 27분 사우디 수비수는 이근호와 거리가 떨어진 것을 보고는 골키퍼 쪽으로 서서히 공을 몰아갔다. 이를 본 이근호가 빠르게 다가들자 당황한 수비수는 어렵게 공을 걷어냈다. 이근호는 상대를 겁주는 것 만으로도 코너킥을 만들어냈다. 그 이후로 사우디 수비수는 공을 잡으면 이근호 움직임부터 살폈다. 후반 33분 이근호는 빠른 돌파로 이를 막아서던 사우디 아티프의 퇴장까지 이끌어냈다.

◆전문 키커 기성용의 위력=박지성, 박주영, 이근호까지, 슛 잘하기 둘째 가라면 서러운 선배들이 즐비한데도 한국의 전문 키커는 막내 기성용이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코너킥, 프리킥 기회 때면 기성용이 공격의 출발점이었다. 전반 21분 상대진영 오른쪽에서 띄운 기성용의 프리킥은 공격에 가담한 이정수의 머리 쪽으로 정확히 향했다. 이정수의 헤딩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다면 멋진 골이 될 뻔했다. 세워놓고 차는 것 만이 아니었다. 전반 42분 박지성이 왼쪽 진영에서 긴 크로스를 올리자 반대편의 기성용은 투구를 기다리는 타자처럼 타이밍을 맞추더니 발리슛을 시도했다. 사우디 골키퍼 알리 알리드는 정확히 골문을 향한 공을 운좋게 잡은 뒤 가슴을 쓸어내렸다.

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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