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개미군단' 증시 떠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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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증시가 다시 극심한 침체에 빠져들면서 개인투자자들이 썰물처럼 증시를 빠져나가고 있다.

장기 투자자들은 물론이고 등락을 거듭할 때마다 "이제는 바닥" 이라며 증시에 도전했던 신규 투자자들조차 이제는 증시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

30대 후반의 회사원인 李모씨는 오랫동안 증시를 기웃거린 끝에 지난 3월초 이제는 바닥이라고 판단해 예금 3천만원을 찾아 증권사 객장을 찾았다.

나름대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신용대출은 2천만원만 받아 모두 5천만원으로 구조조정 이후 회생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이는 금융종목을 매수했다.

구조조정도 순조롭게 되는 것처럼 보였고 종합주가지수가 500선에 장기간 머무르는 것을 보더라도 이제는 주가가 오를 때가 됐다는 기대감에 찼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속도가 느리고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지적이 외국 금융기관들로부터 쏟아지면서 종합지수가 400선으로 밀리더니 근로자의 날 대규모 시위가 주가 폭락의 도화선이 되면서 李씨의 꿈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증권사는 지난달 30일 신용융자금액을 제하면 2백여만원이 덜렁 남았으니 돈을 더 갖다 붓지 않으면 강제로 팔아치워 신용을 회수하겠다고 통보했다.

말로는 집을 팔아서라도 추가 담보를 예치하겠다고 했지만 집을 팔 수도 없고 집값이 폭락해 집을 내놔도 팔릴 일도 아니었다.

결국 李씨는 추가 담보금을 구하지도, 만기를 연장시키지도 못해 4일 반대매매를 통해 2백여만원을 돌려받고 증시에서 완전히 미련을 버렸다.

이처럼 증시가 침체의 늪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면서 개인투자자들의 증시 이탈이 증시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증시 거래의 70%에 이르는 '증시의 기둥' 인 개인들이 이탈하면 기업의 심장인 증시는 속빈 강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선 '개미군단' 의 증시 이탈은 객관적 수치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 3월초만 해도 3조5천억원선을 웃돌던 고객예탁금은 지난달말 간신히 2조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3월결산 법인들이 현금 배당금으로 1조원을 지급한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1조원이상이 더 빠져나갔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신용융자잔고의 격감은 증시에 대한 개인들의 기대치를 대변하고 있다.

2일 현재 신용융자잔고는 사상최장인 51일 연속 감소해 사상최저 수준인 5천6백99억원으로 위축됐다.

이제는 돈을 빌려 주식을 사봤자 기대수익은 커녕 이자 물기에도 벅차다는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투자분위기가 식으면서 거래량과 거래대금도 사상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최근엔 하루 평균 4천만주.3천억원선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거래부진과 주가폭락이 지속되면서 올들어 새로 도전했던 투기성 높은 투자자들과 실직자도 최근 증시에서 쓴맛을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말 50, 60대 퇴직자와 '아줌마부대' 에 이어 올들어 "이제는 진짜 바닥" 이라며 투자에 나섰던 투자자들이 모두 증시를 떠나게 되는 양상이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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